장관급회담 北몽니에 南긴장…쌀로 `얼룩’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1일 마지막 날을 맞았지만 쌀 차관 합의부터 먼저 지키라며 사실상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북측 때문에 회담장 안팎에서는 긴장감은 물론 허탈감마저 감지되고 있다.

쌀 차관에 집착하는 북측의 태도는 이번 회담 분위기를 좌우했다.

정부가 애초 북핵 2.13합의의 이행에 진전이 있을 때 쌀 북송을 시작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을 때부터 예상됐던 분위기지만 북측의 몽니는 조금씩 강도가 높아졌고 `협상 없는 회담’에 가까운 상황이 초래됐다.

북측의 권호웅 단장은 회담 첫 날인 29일 “모내기를 위해선 준비를 잘해야 한다”며 쌀 차관의 시급성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꺼낸 데 이어 30일 전체회의에서는 “현재 북남 사이에 합의된 문제들이 외세의 간섭으로 그 이행이 중단되고 있다”고 쌀 북송의 지연을 꼬집었다.

북측의 대응은 치밀한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권 단장이 30일 남북 만찬에서 “참관도 좋았고 식사까지 오늘까진 좋았는데..”라고 말한 것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당시 이재정 장관이 권 단장의 손을 꼭 잡으면서 “오늘까지가 아니지.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고 그렇게..”라며 `수습’을 시도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북측은 3일째인 31일 본색을 드러냈다. 수석대표접촉에서 쌀 차관 합의부터 지키라고 강조했고 본 의제에 대한 논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5월의 마지막 밤을 새우면서도 북측은 우리의 접촉 제의를 무시했다.

이 때문에 보통 회담 이틀째에 주고받는 공동보도문 초안은 교환하지도 못했다. `시위’나 `몽니’의 도를 넘어선 것이다.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 마련된 회담장 앞에는 밤새 적막감만 감돌았고 우리 대표단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측은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 대조를 보였다. 과거 환송만찬을 대체한 남북 대표단의 공동석식 자리에서도 북측 권호웅 단장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도 목격됐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제19차 장관급회담에서 쌀 차관을 달라며 이른바 `선군(先軍)’ 발언까지 하며 시종 굳은 모습이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를 놓고 쌀 차관 북송지연에 대한 우리 정부 방침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평양에서 판단하고 내려왔기에 그랬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5월 하순 첫 항차 출항’이라는 쌀 차관 북송시기가 박힌 합의문 때문에 오히려 쌀을 꿔가는 측에서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북측의 이런 여유와는 달리 남측은 시종 불안하고 긴박한 모습이었다.

매일 밤 정부 핵심 당국자들이 그랜드힐튼호텔에 모이는 모습이 목격되는가 하면 31일 오전에는 이재정 장관,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을 포함한 대북 라인 고위급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하는 상황까지 포착됐다.

이 자리에는 김만복 국정원장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 원장은 30일 밤에도 호텔을 방문해 서훈 국정원 3차장, 청와대 안보실 당국자 등과 함께 장시간 머물며 이 장관을 만나는 등 대책을 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회담장 안팎에서는 쌀 문제 때문에 정부가 방침 선회 여부를 고민하는 과정으로 여기는 관측이 주류를 이뤄지만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메가톤급 의제가 다뤄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온갖 관측이 난무했다.

국정원은 1일 이에 대해 “국정원장은 통상 남북회담 개최시 회담장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해왔으며 이번에도 통상적인 격려 방문”이라며 “회담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통일부 장관과 대화를 나눈 뒤 회담 상황실을 방문하여 관계자들을 격려한 것”이라고 밝혔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