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 입고 남조선으로 튀면 어떡합니까?”

▲ 北 해외동포후원회 김수만 부위원장(왼쪽)과의 식사. 중앙이 필자

북한의 동해안 강원도 고성읍에는 국제양식기술 강습소가 있다. 기술 강습소는 UN개발기금에서 40만 달러를 지원받아 전복양식에 대한 연구를 한다. 1979년 발족한 <아세아 태평양지역 양어 양식 연구기구>에서 관리하면서 매년 1월과 8월에 8개 회원국이 참가하여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90년대 초반 북한 수산위원회 소속 수산회사에서 전복 양식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수산위원회가 감독기관이기 때문에 자원보호 기간에도 잡을 수 있는 규격은 채취해도 좋다고 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테니 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재래식 잠수복으로는 전복 채취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생산량을 많이 올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개인용 잠수복이 필요한데 현대식 개별용 잠수복 일체를 12세트만 1차로 공급해주면 현물(전복)로 대금을 상환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잠수복 구입 대금의 30%를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70%에 해당하는 금액은 채취현장에서 현물을 직접 인수받기로 했다. 가격은 당시의 수입국(남한) 시세대로 합의 결정하기로 했다. 전복 채취량의 50%를 건네 받기로 했기 때문에 많이 잡을수록 단기간 내에 상환을 끝 낼 수가 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잠수복 가격을 조사했다. 대만 제품이 품질도 괜찮고 산소통 2개와 잠수용 시계까지 포함, 세트당 1,500달러 정도됐다. 12세트면 총 금액이 18,000달러다. 북경을 경유해 평양으로 연락을 하니 견본을 보고 최종 결정을 하자고 해, 견본 한 세트를 가지고 평양으로 갔다.

북한과 통신 위해 캐나다 팩스 이용하던 시절

북한 당국은 잠수복을 살펴보더니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북한 당국자들이 즉시 주문을 요구하기에 당시에는 인천-남포 직항 선박이 없어 2개월 후 남포 도착으로 계약을 했다. 그 당시에는 부산에서 선적하여 홍콩으로 탁송했다가, 다시 북한 선박에 선적해 남포로 보내야 했다. 그러니까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수산위원회의 구매 허가가 나면 계약금 30%를 평양에서 받기로 하고 견본을 두고 일단 귀국했다. 2주 동안 서울에 체류하며 북한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어 일단 미국으로 돌아왔다.

4주가 지나자 급히 평양으로 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잠수복 몇 벌 팔자고 미국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다시 북경으로, 북경에서 평양으로 꼬박 6일이 걸리는 여행을 하자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북한과의 통신도 캐나다를 경유해 텔렉스로 연락을 할 때다. 통신이 한번 어긋나면 한 달은 보통이고 더 걸릴 때도 있었다.

필자는 그때 속으로 ‘자기네들은 평양시내에서도 마음대로 이동의 자유가 없으면서 지구 반대쪽에 사는 나를 무슨 옆집 가듯 필요하면 오라 가라 한다’고 맘 상한 소리를 하곤 했다. 고민 끝에 연락을 했다. ‘무슨 일로 오라고 하는가? 다음 달 어차피 평양에 가야 하니 그때 만나 상담하자’고 연락을 취했다. 회답도 없다.

평양에 도착하니 진 선생이라는 처음 보는 나이가 꽤 많은 안내원이 필자를 반겼다. 공항에서 처음 보는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잘 알고 찾아내는지? 하기야, 공항에 나가보면 찾는 사람은 느낌으로 당장 알 수가 있을 정도니 신기할 것도 없다. 그래도 단 한번의 확인도 없이 먼저 인사를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평양에서는 맥주가 술이 아니다?

고려호텔에 들어서니 수산위원회에서 나온 두 사람이 반긴다. 방을 정하고 저녁식사 초대를 한다. 어디론가 좀 떨어진 곳으로 갔다. 문패도 없는 아담한 보신탕집이다. 동평양에만 유명한 보신탕집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집은 특별 손님을 초대 할 때만 이용한다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나온 김 부위원장과 키가 작고 깡마른 리 국장이 먼저 기다리고 있다. “사장 선생 오신다고 해서 먼저 와서 기다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데가 많다. 우리 풍습이나 상식 같으면 먼저 식당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도중에 “아무개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해줄 텐데, 그런 말은 아예 없다. 그래서 옛말에 시치미 떼면서 말을 안 해주는 사람을 “빨갱이 같다”라고 표현한 모양이다. 그곳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평양이 원래 보신탕 요리를 잘 하니까 음식은 입에 짝짝 붙는다. 술도 한잔 했겠다, 내가 먼저 눈치 볼 것도 없이 “잠수복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문제가 생겨 좀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오늘은 술이나 마시고 내일 만나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 하자는 거다. 심각한 내용인 듯한 눈치다.

평양에서는 ‘술’하면 소주나 다른 독주를 의미한다. 그 이외의 맥주, 양주, 포도주 등은 그 이름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너 술 마셨구나?” 하면 “아니야요. 맥주 마셨시오”라고 대답한다.

남한으로 도망칠 것 우려해 신형 잠수복 구입 못해

다음날 수산위원회소속 수산회사의 김 사장이 왔다. 뭔가 우물쭈물 하는 것 같다. 쉽게 말을 못하고 망설인다. 나이는 좀 어리지만 일을 야무지게 처리를 잘 하기 때문에 사장까지 됐는데 딴소리만 한다.
“잠수복에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사실대로 말을 해봐요. 괜찮으니까.”

나는 김사장의 너무나도 충격적인 설명을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야기인즉, 우리 수산위원회에서는 모든 것이 결정났는데 밝힐 수 없는 기관에서 문제 제기를 해왔다고 한다. 잠수복을 입고 물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 사람들이 서로 약속을 하여 남쪽으로 전부 가버리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적인 생각을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끔찍했다는 것이다. 역시 정보기관이라 우리보다 훨씬 앞서 예견하고 있더라고 감탄까지 했다고 한다.

전복 채취량을 늘리기 위해 신형 잠수복을 도입하고 싶어도 남한으로 도망칠 것이 두려워 허가하지 못한다는 북한 정보기관의 설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에 감탄하는 수산위원회 관계자들의 태도는 또 뭐람.

그렇게 잠수복 구입 논란은 끝나고 말았다. 견본은 어떻게 됐느냐고 궁금해할 독자분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속상해서 대답하지 못함을 양해바란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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