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독재정권 아래서 혁명이 상실되는 역설

북한에서 3대 권력 세습이 진행되면서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나타날 북한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많아지고 있다. 적지 않은 분석가들은 권력 세습이 성공하기 어려울 줄 알고 김정일 사망이 체제의 위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들 전문가들의 말한 대로 북한 엘리트가 권력 세습을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할 수 있다. 세계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혁명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김정일 사망 이후에 북한 체제가 얼마 동안 그대로 계속될 가능성이 김정일 사망이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보다 더 높다고 믿는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정권은 조만간 무너질 것이다. 북한 엘리트는 해결 방법이 없는 딜레마에 갇히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한편으로 분단국가인 북한에서 중국식 개혁과 개방이 남한에 대한 지식의 확산을 야기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과 국내 안정성을 파괴하고 중국식 급성장보다 동독식 체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 권력 엘리트는 정치 자살처럼 보이는 개혁과 개방을 하지 못한다. 다른 편으로 개혁과 개방을 실시하지 못하는 바람에는 북한 정권이 효율성이 낮은 스탈린식 경제 모델을 포기하지 못해 남한이나 중국 경제를 따라 가지 못해서 세월이 갈수록 더욱 뒤쳐지고 있다. 동시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해외 생활에 대한 지식의 확산 및 부정부패가 초래한 감시 체제의 약화는 정권의 사상적인 기반을 점차 약화시키고 있다.


조만간 집권계층의 경제 무능력과 정치적인 권위주의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노출되고 북한 체제는 치명적인 위기에 빠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치명적인 위기가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다. 현 단계에서 북한 정권은 비교적으로 안정되게 보인다.


권력세습이 국내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석가들은 위기의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엘리트 내부 충돌이나 이 충돌이 불러일으킨 민중 반란을 의미할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지금 북한에서 엘리트 내부 충돌이 발발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민중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도 아직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상식과 달리 혁명은 열악한 생활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일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사회문제 해결보다 식량 얻기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은 극한 빈곤에 빠진 나라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는 최근에 중동 혁명을 보면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아랍 혁명의 발생지인 튀니지는 석유가 많지 않은 중동 국가 중에 일인당 소득이 제일 높은 나라라고 꼽힐 수 있다. 혁명 직전 튀니지에서 일인당 GDP는 $9,500정도인데 결코 빈곤한 나라가 아니다.


혁명이 발생할 조건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대안’에 대한 인식은 아마 제일 중요하다. 바꾸어 말해서 국민은 보다 더 좋은 생활이 가능할 줄 알아야 혁명에 동참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기타 국가 국민의 생활, 아니면 사상가들이 제안한 대안 사회 모델에 비교하고 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정권에 도전한다.


예를 들면 1989년에 공산정권을 전복한 동유럽 민중이 서유럽 생활에 대해 잘 알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체제를 매력적인 대안으로 봤다. 반대로 1979년에 이란 정권을 도전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이상화된 이슬람 전통을 현대 사회를 대체할 대안모델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존재하는 대안이든, 이론과 환상에만 존재하는 대안이든 관계 없이 주민들은 널리 인정된 대안이 있어야 혁명에 동참한다.


혁명의 두 번째 조건은 정권이 권위주의라고 해도 어느 정도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사회 정치 활동을 묵인해야 된다. 국민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저항과 항의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정권에 도전하는 혁명은 드물다.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제일 야만적인 독재국가들은 내부 저항 때문에 무너질 전례가 거의 없다.


예를 들면 1976년에 캄보디아에서 정권을 잡은 캄보디아 공산당이 지도한 ‘크메르 루즈’ 운동은 4년 치하 동안 전체 인구의 20%정도를 학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국내에서 저항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정권을 도전하면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가족까지 즉각적으로 체포되고 비인간적인 고문 다음에 사형을 받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전례 없는 살인적 독재를 전복한 세력은 캄보디아 국민들이 아니라 ‘크메르 루즈’보다 훨씬 온건한 노선을 실시한 베트남 공산당의 군대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비슷한 사례가 많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모택동이나 김일성처럼 권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만큼 많은 양민들을 학살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독재 정권은 자발적 혁명에 대해 신경을 깊이 쓰지 않는다.


절대 감시 하에 살아온 국민 대부분은 조직할 수 없고 저항을 아무 의미가 없는 자살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로 여긴다. 역설적으로 혁명에 의해서 전복된 독재정권은 어느 정도로 국민의 자유로운 활동을 허용하고 대안 사상의 확산을 묵인하고 무죄한 양민들을 ‘지나치게’ 학살할 의지가 없는 정권뿐이다.


셋째로, 대안 사상이 확산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 주민들이 정치를 조용히 논할 수 있는 정도로 서로 믿고 정권과 직결되지 않은 대안 엘리트가 있어야 되다. 혁명이 발발할 배경을 자세하게 보면 노동조합이나 종교단체, 아니면 지식인들의 단체이나 문화단체가 혁명 사상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반정권 세력의 핵심 구조가 되었다.


현대사에서 성공적인 혁명을 지도한 세력은 압도적으로 체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지식계층 출신들이다. 흥미롭게 공산주의 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산당은 자신을 무산계급의 세력으로 묘사했지만 공산당 고급지도자들은 거의 다 특권계층 출신들이었다. 레닌은 고위공무원 집의 아들이며 트로츠키의 아버지가 제정러시아에서 최대 유태인계 지주로 유명했다.(下편에 계속)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