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파견된 자국 노동자들의 탈북을 막기 위한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잔악해지고 있다. 국경봉쇄 장기화로 파견자들의 해외 체류가 길어지자 북한 당국이 노동자들의 탈북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8일 데일리NK 러시아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4일 정치학습 시간에 노동자들의 동향 보고 및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포치(지시)가 하달됐다.
해당 정치학습 시간에는 러시아 현장 작업소장, 책임일꾼, 당비서, 보위지도원 등의 노동자 관리 간부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분간 인원 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며, 비자가 만료됐거나 최장 파견 기간(10년)을 채워 귀국해야 하는 대상자도 앞으로 1년간 파견이 연장된다는 내용이 전달됐다.
그러면서 이러한 조치는 대북제재 때문이 아니라 감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국가방역 조치에 따른 것이라는 강조도 담겼다.
현재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외 체류자가 입국함으로써 한순간에 방역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고 한다.
한편 북한 당국은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탈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보다 강력한 통제 정책도 제시했다.
당국은 포치문을 통해 ‘평소 불평·불만이 많거나 동향이 수상한 자, 조국을 버리고 도망치려 하는 자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실태보고를 상시화해서 실제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다만 ‘조국을 등지고 도망치려 했다면 반드시 체포해 국가보위성에서 규정한 송환 절차에 따라 귀국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파견자들 사이에서 ‘국가보위성이 규정한 송환 절차’란 탈북 시도자가 스스로 걸을 수 없도록 다리에 상해를 입힌 후 귀국시키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러시아 파견 경험이 있는 탈북자 A 씨는 “국가보위성의 내부 규정에 따른 송환 절차가 다리를 꺾어서 못쓰게 만든 후 삼륜차(휠체어)에 태워 귀국시킨다는 뜻이라는 것을 노무자(노동자)들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본 적은 없다”며 “국가가 직접 이런 언급을 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내부 고위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실제로 러시아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한국행을 결심하고 2017년 1월 말 러시아 주재 유엔 대사관을 찾아갔던 주경철 씨(북송 당시 28세)도 국가보위성 체포조가 러시아에 들어와 주 씨를 체포한 후 아킬레스건에 상해를 입혀 마취시킨 후 강제 송환됐다고 한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한국行 꿈꾸던 러시아 파견 북한 군인, 납치·처형됐다”)
국가가 개인에게 상해를 입혀 강제 송환시키는 잔인한 방법을 취할 만큼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자들의 탈북을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서도 북한 당국은 포치문에서 노동자들이 국가에 헌납해야 하는 국가계획분, 이른바 ‘충성의 자금’은 축소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해외 파견자에 대한 인원 교체를 시행하지 못하면서도 외화벌이를 통해 당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당국의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현재 러시아에 파견돼 있는 인원들이 벌목, 건설 등 노동을 지속하며 1인당 1년에 적게는 4500달러에서 많게는 1만 달러까지 당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당국에 납부하고 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6월 러시아에 파견돼 있는 노동자들의 당자금 할당량을 30~55%가량 인상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러시아 파견 신규 북한 노동자, ‘50% 폭등’ 충성자금에 아연실색)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은 대부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데다 생활 환경이 열악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이 납부해야 하는 당자금까지 폭등하자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귀국을 희망한 노동자가 많았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포치를 통해 ‘인원 교체 불가’를 밝히면서 동시에 인상된 당자금의 지속 납부를 지시함에 따라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의 불만 고조가 예상되지만 강력해진 당국의 감시에 이들이 쉽게 탈북을 결심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