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 5027 유출’ 보도… 우리 언론 정말 실망스럽다

놀라운 일이다. 대한민국 현역 소장(少將)이 북한과의 전쟁 상황을 상정하여 만들어 놓은 ‘작전계획 5027’을 북한에 유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옛날식 표현으로 하자면 정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안보의식에 정말로 심각한 구멍이 생긴 것일까? 언론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조선일보가 맨먼저 보도했다. 이 때문인지, 다른 언론들이 이 경천동지할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타사의 특종을 우리가 왜 쫓아가나?” 식으로, 21세기 언론에 구시대적 ‘장사 사고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조선일보 특종이건, 한겨레 특종이건 간에 사건의 성격 자체가 심각하다면 신문들은 자체적으로 사안의 경중을 판단해서 다루면 된다. 눈치 볼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동아·중앙조차 이 놀라운 사건을 1면에서 다루지 않았다. 


정말 왜 이렇게 됐을까?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데, 어째서 국가안보 관련 특종 기사에는 조 중 동 한국 한겨레 경향이 따로 노는가? 언론 스스로가 “국가안보는 여야가 없는 초당적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안보관련 특종기사에는 동인서인 노론소론 시파벽파가 왜 그대로인가?


도대체 언론부터 이 모양이니, 국제조사단이 동원된 천안함 사건 결과를 믿지 않는 국민이 무려 29%나 되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동서독 분단 시기에, 서독의 NATO 현역 육군 소장이 동서독의 전쟁상황을 상정한 작전계획을 동독에 유출한 사건이 터졌다고 상상해보라. 서독 언론들이 과연 지금 우리 언론들과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을까? 아마도 사건이 보도된 3~4일이 지난 이 시기 쯤이면 내각 총사퇴가 현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정권이 위태위태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작계 5027’이 어떤 문건인가? 대한민국 안보에서 최상위급 비밀이다. 전시(戰時)에 한·미 연합군의 전력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디로 이동하는가? 연합군의 북한 지역에 대한 전략적 목표는 어디까지인가? 북한지역 동서해 상륙작전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점령지 군사· 민사 작전은 어떻게 수행되는가? 등등의 세부 계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한민국과 한반도 7000만 주민의 운명이 총체적으로 달려 있는 계획이 바로 ‘작계 5027’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전계획을, 그것도 현역 육군 소장이 북한에 유출시킨 대사건이 터졌는데, 언론도, 시민단체도 놀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흔히 하는 말로, 비커(실험실용 유리잔)에 개구리를 넣어 천천히 열을 가하니 뜨거운 줄도 모르게 된 것일까?


물론 김정일 정권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는 문제와, 국가안보의 특급비밀을 유출시켜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라는 태도는 결코 병립(竝立)될 수 없는 문제다.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건 낮건 간에 국가 특급기밀이 북한에 유출되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적 대사건’이다.


천안함 피격은, 그 자체로는 북한 특수부대에 한방 맞은 것이다. 전투에서는 질 수도 있고, 또 작은 전투에서 진 것을 탓해선 안된다. 하지만 국가 특급기밀을 적의 수중에 넘긴 것은 대한민국 5천만, 나아가 북한 주민 2300만까지를 동시에 위험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는, 재앙적 사건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 기무사, 검찰, 경찰 등 관계 수사당국은 총력체제로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암을 수술할 때 확실히 전이된 부분 그 이상을 도려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듯이, 이 사건을 암수술 하듯이 처리해 가야 한다.    


동시에 우리 언론들이 현 시기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언론은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사실보도와 정확한 논평, 여론형성을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가 올바르게 진보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언론인은 늘 각성(覺醒)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원래 ‘중도'(中道)의 ‘中’ 자는 ‘가운데 중’ 자가 아니라, ‘적중(的中)할 중’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언론인들은 스스로 늘 깨어있어야(覺醒) 사물과 현상의 운동의 중심을 바로 볼 수 있는데, 이번 현역 소장의 ‘작계 5027’ 유출사건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수준은 정말 실망스럽다.


중도는 좌-우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의 운동의 중심을 꿰뚫어보고 가장 적중하는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적중하는 정책을 세우고 밀고 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의미의 ‘중도 실용주의’다. 예를 들면, 박정희 시기 ‘대한민국 산업화 전략’이 양궁으로 치면 과녁의 ‘퍼펙트 골드’를 때린, 중도 실용주의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들이 박정희 시기 경제개발 전략을 전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중도주의는, 일반인들의 눈에 그것이 오른쪽으로 보일 수도 있고 왼쪽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판단의 기준은 좌-우가 아니라 사안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정확한 문제해결 능력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부는 안보문제에서 ‘중도 실용’의 철학이 준비돼 있지 못하고, 절충주의 내지 봉합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천안함 사건 초기에 그런 오류가 심각하게 나타났고, 이후 민군 조사 발표에서는 깔끔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지금은 또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같다.


6.2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정부 내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양인데, 안보문제는 좌우 없고 여야 없다는 원칙을 확실히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중도 실용’의 핵심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