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진보연대’, ‘反진보연대’로 제 이름 찾아가라

진보연대(대표 오종렬) 회원 50여명이 풍선을 이용해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려던 납북자가족모임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2일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는 가스총이 허공에 발사되고, 흉기에 사람이 다치고, 몸싸움과 고성으로 얼룩진 난장판이 벌어졌다.

진보연대 사람들은 이날 이곳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계획된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미리부터 진을 치고 납북자가족모임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을 기다렸다. 숫자상 우위에 있던 진보연대 사람들은 언론사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전단 살포 준비측의 전단과 현수막을 빼앗았다. 몸싸움과 험한 고성이 이어지는 속에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하늘을 향해 가스총을 쐈고, 그의 동생은 진보연대 사람에게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상황과 이유, 그리고 그 충정(忠情) 유무를 불문하고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의 흉기사용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정당치 못하다. 우리가 김정일 수령 독재를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가 폭력을 통해 북한인민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비이성적 억지에는 이성적 논리로 대응해야 하며, 불법 폭력에는 법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 운동가의 참 모습이다. 물리적 충돌을 염두에 두고 실력행사에 나선 진보연대 사람들 정도는 대한민국 법과 국민여론에 맞겼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이날 사태의 본질은 눈앞에서 펼져졌던 폭력행위와 물리적 충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태의 발단이 자칭 진보연대의 ‘반(反)진보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진보연대 회원 50여명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시차적 경과분석으로 책임의 선후를 따지는 것도 나중일이다. 진보연대가 과연 ‘진보스러운’ 단체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부터 절실하다.

진보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의 면면을 보면 모두 나름 과거부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이다. 그렇다면 민주화가 무엇인가? 자신만이 옳다는 권위주의 독재에 대한 저항이자 사상과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모든 자유를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들에게 되찾아 주자는 것이 그 시작과 끝이다. ‘진보’라면 어느 사회,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가장 헌신적이어야 한다. 이 ‘자유’와 ‘민주’를 줄여가거나 거두어가려는 ‘반동’과 맞서는 것에서 ‘진보’의 존재가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김정일에게 빼앗긴 최성용 대표와 북한에 형제들을 두고 온 박상학 대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피붙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이런 자유의 확장을 위해 싸우는 것이 ‘진보’다. 마음껏 김정일을 칭송하고, 부담 없이 김정일 세력과 교류할 수 있도록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싶거든 먼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자유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진보연대와 관련 단체 사람들은 넘어서는 안되는 선(線)을 넘어 버렸다. 그들은 지난 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이유로 ‘평화적 시위’를 보장하고 있는 우리의 법체계를 무너뜨리더니, 국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취임 100일 만에 ‘퇴진’을 종용했다. 거기까지도 봐 줄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자신들의 주장과 의견에 반(反)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자유마저 ‘머리수’로 짓밟았다.

이런 세력이 ‘진보’라 사칭하는 것은 ‘전두환 정권’과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만큼이나 엇박자다. 진보연대는 오늘 벌어진 사태에 대해 국민들 앞에 반성하고 깊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마저 부정하고 어설픈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국민들은 이제 그들을 ‘반동연대’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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