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희망 안고 수만리 여정 헤쳐온다”

▲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탈북자들

2003년 중국 엔타이(烟台)에서 보트를 타고 한국으로 탈출하려다 체포되어 북송되었던 40여명의 탈북자 가운데 ‘옥주 모녀’가 재탈북에 성공해 한국행을 요청한 가운데, 탈북자들의 입국경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탈북자들은 대부분 한국에 이미 입국한 가족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 입국한다. 남한에 가족이 없는 탈북자는 NGO의 도움을 받거나 브로커에게 돈을 주는 방식, 혹은 스스로 수만 리 길을 걸어 제3국을 통해 국내에 입국한다.

핸드폰으로 가족들과 ‘전화 상봉’

서울시 양천구에 거주하는 탈북자 정옥희(가명, 2004년 입국)씨는 “가족생각에 잠 못 이룰 때가 많다”며 “기회가 된다면 가족 모두를 한국에 데리고 오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현재 정씨는 정부 보조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한 달에 한번씩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해주고 있다. 정씨는 “가족과 함께 남한에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통일연구원이 870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65%가 “정착금을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입국시키는데 최우선적으로 사용 하겠다”고 답했다.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을 퇴소하자마자 탈북자들은 북-중 국경지역의 화교, 조선족들을 통해 가족들과 연락을 시도한다.

가족과 연결을 해줄 ‘대리인’이 생기면 일정한 돈을 지급하고 가족을 중국으로 데리고 나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주겠다는 일종의 ‘계약’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대리인’들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의뢰인의 북한 내 가족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보통 ‘대리인’은 중국과 북한을 넘나들 수 있는 북한 국적의 장사꾼을 연락책으로 활용한다.

가족을 찾으면 이들을 국경지역으로 데리고 나온다.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에게 북한 내부의 가족이 생존해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기 위해서다. 방법은 휴대폰 통화. 북한 국경지역의 중국 휴대폰이 통하기 때문에 남한과 국제통화를 통해 ‘전화 상봉’이 이루어진다.

“남한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북-중 국경지역의 감시카메라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가족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면서 생활비 명목으로 적게는 몇 십 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 만원까지 송금을 해준다. 북한 내부 가족이 돈을 받는 방법은 ‘대리인’을 통해서이다. 대리인의 통장에 돈을 보내주면, 대리인은 수고비 명목으로 20-30% 정도를 돈을 떼고 북한의 가족에게 전달해준다.

보통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북한의 가족과 통화를 할 때, 자신이 남한에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이야기한다. 가족들이 받을 정신적인 충격과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한의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가족도 있다고 한다.

2003년 입국한 김순미(가명)씨는 지금까지 어머니와 동생 2명을 입국시켰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설득해 중국으로 데리고 오는데 힘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6개월간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중국에 오시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국경을 넘는 것을 아주 꺼려했다”며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꼭 한번 얼굴이라도 보자고 해서 국경을 넘도록 했다”고 밝혔다.

중국 발전상 보면 북한에서 속았다는 것 깨달아

▲중국 선양의 화려한 밤거리

대리인의 도움으로 국경을 넘은 가족들은 중국에서 일정기간 생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은 가족의 한국행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보통 자신이 직접 중국으로 가서 가족을 설득한다.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은 쉽다. 발전한 중국의 발전상을 본 가족들은 지금까지 북한에서 받았던 교육이 전부 허구였음을 금방 알게 된다. 김씨는 어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북한”이라고 말해줬다 고 한다. 나이든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지만 휘황찬란한 중국 거리의 불빛을 보고 이내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보다 더 발전된 나라가 한국”이라는 중국인들의 말에 김씨의 어머니는 한국행을 결심하였다.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 대해 처음에는 선뜻 믿지 못하지만 결국 자유를 찾는 대장정에 나선다.

2004년에 가족 4명을 동시에 입국시켰던 안성만(가명, 2001년 입국)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설득을 했다”면서 “중국이 먹고 살만하다는 것과 남한사회의 발전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 했고 남한비디오, 노래 테이프를 대리인을 통해 볼 수 있게끔 했다”라고 말했다.

수만 리의 여정을 통해 한국 입국

가족이 설득되면 대리인을 통해 탈북 루트를 정하고 소요될 비용을 지급한다. 이때 비용이 만만찮다. 한 명당 적게는 2백 만원, 많게는 1천 만원을 지급한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소 8백 만원에서 최대 4천 만원까지 소요된다.

한국행 준비가 완료되면 보통 라오스를 거쳐 태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다. 버스와 택시, 기차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게 된다. 라오스를 벗어나 태국에 갈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 라오스는 태국과 달리 북한과 ‘범죄자 인도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잡히게 되면 돈으로 매수해 풀려 날 수도 있지만 재수 없으면 송환될 수도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조심에 조심을 기한다.

이들이 이동하는 거리는 중국-라오스-태국까지 장장 6천km, 수만 리 여정이다.

태국을 통해 입국한 이민철(가명, 2004년 입국)씨는 “남한을 간다기에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나 수만 리 탈북 여정이 너무나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자유에 대한 염원, 이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겨 낼 수 있었다”라고 당시의 심경을 표현했다.

긴 탈북 여정에 성공한 탈북자들은 태국의 유엔 이민국이나 한국 대사관을 통해 그토록 그들이 원하던 자유를 찾게 된다.

김용훈 기자 kyh@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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