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있을 때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는 건 말 그대로 사치였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가끔 조직생활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뛰어 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 암기시간이면 반발감도 밀려왔다.
그럴 때면 오사리(오재미)를 들고 운동장으로 무작정 뛰어나가곤 했다. 철없는 동심은 또래들의 욕구를 추동하고 말았던 것이다. 넘어지고 뒹굴며 천진하게 놀던 그 시절은 지금도 싱그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짧았던 자유는 ‘수령님의 사상을 공부하지 않도록 학급을 주동한 자유주의분자’라는 체벌로 돌아왔다.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할 때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상비판이 쏟아졌던 것이다. ‘당의 참된 딸’로 살아가야 된다는 세뇌화 시간이었다. ‘수령이 곧 조국이며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순종의 사슬에 북한 주민들은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이는 3대 수령들(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최대 ‘업적’(?)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른 뒤 진실을 전하는 대북방송을 접하면서 의식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세상이 보였다.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이후 ‘억압에서 벗어나 마음껏 살아보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은 탈북을 시도했다. 정착 초기엔 한국 정착 초기 사회주의 지옥을 버리고 자본주의 천국으로 왔으니, 마음대로 해보자는 욕심이 넘쳤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자유는 법률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도 뒤따랐다. 법의식과 존중은 한국시민의 기본 자질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탈북민으로서 한국에서의 첫 아픔은 ‘법맹’(法盲)이라는 장벽을 느낄 때였다. 목숨 걸고 찾아 온 자유가 오히려 남한에서 짓밟힌다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불만만 가득한다면 탈북정착 실패는 불가피하다.
탈북민은 고위간부부터 군인, 무역일꾼, 학자, 일반주민 등 행태는 다양하지만, 성향은 비슷하다. 특이한 자존감이 존재한다. 이에 특이한 ‘자기애’에 공격성만 남는 경우도 다분하다. 하지만 남한의 ‘자유’와 ‘평등’ 앞에 누구나 한 번쯤은 좌절을 맛보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일어서는 순간 성공적 정착은 시작된다. 북한에서 강조하는 성분은 여기에선 중요하지 않다. 누구든 자세를 낮추면 세상이 보인다. 이렇게 성공한 탈북민들은 배움 속에 품격을 높이면서 한국사회와 공조한다. 탈북민들이 한국에게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북한 주민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진정한 한반도 통일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