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인터뷰1 보기) 김구 선생이 북한 김일성과 대화로 남북통일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고 판단, 남북합작을 시도한 것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무모한 발상이었다는 말인가?
김구 선생은 철저한 민족주의자다. 그만큼 민족주의적 투지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미군 철수를 통해 남한까지 공산화하려는 계획하에 진행한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하고, 미군 비난 결의안까지 지켜본 것은 스스로 책임지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계획적인 이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 이 교수는 평소 민족주의적 감성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해왔는데, 이번 책에서는 이러한 민족주의를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대중과 타협책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민족주의가 하나의 대안적 정치원리는 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은 감성적인 동물인데, 이러한 감성적인 차원에서 한국인들은 굉장히 민족주의 적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든 인종적 동질성, 언어적 동질성, 역사적 기억에 대한 동질성, 자연환경에 대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이러한 환경적 역사적 토대에서 태어난 감성적 범주다.
그 자체가 우리가 선진국이 되거나 통일 과정에서 대안적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이념이 앞장서서 민족주의를 콘트롤 하고 뒤에서 밀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이념이 민족주의를 지도하고 끌어당기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통일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순기능도 하지 않을까?
통일 과정에 대해 묻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만 보는 것은 감성적 판단이다. 대신 우리가 어떤 통일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적 이념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한 통일 이념을 빼버리면 북한 헌법에 나온 우리민족끼리와 다를 바가 없다. 북한 사람에게 민족이라는 것은 김일성의 태양민족 개념이다. 우리가 말하는 민족 통일과 북한의 청소년들이 말하는 우리민족끼리는 다른 개념이다.
– 통일문제에서 민족주의는 제외돼야 한다는 것인가?
통일을 가지고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하자는 건 아니다. 통일의 당위성을 거기서 찾을 뿐이고, 진정한 통일교육은 자유민주주의 교육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북한의 동포들은 그렇지 않다.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서 북한 동포에게도 자유를 안겨 줘야 한다. 젊은이들이 이념적인 기준을 가지고 통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통일의 기본 지향을 자유와 인권에서 찾게 되면 스스로가 굉장히 강해질 뿐만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공세적인 입장이 될 수 있다. 남한의 국민 전체가 사상적으로 단결되어 있다면 북한 주민들이 결국 우리를 따르면서 봉기할 것이다.
북한이 저렇게 버티는 것은 남한 책임도 있다.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북한의 정치 수뇌부를 향해서 ‘너희는 미래가 없다. 배급을 차별하고 사람을 차별하고 그럼 너희에게는 엄중한 책임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고 기회가 생길 때 마다 경고해야 한다.
– 최근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서로 경쟁하는 형태로 가는데 그런 걸 선동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조금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가 모두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국수적 민족주의를 내세워서는 동아시아에 희망이 없다.
– 조선이 멸망하고 식민지를 거쳐 건국에 이르기까지 큰 전환기를 겪었다. 이후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적 성취를 매우 빠르게 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문명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다른 나라에서는 쉽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성립시킨 나라가 한국뿐인가? 필리핀처럼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제도와 자유 시장 경제체제와 성립시키지만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고는 선진국에 가까운 성취를 이룬 나라는 없다.
그게 1948년 이후 65년간의 역사인데 왜 그렇게 특별한 성취를 할 수 있었던가를 이 책에서 썼다. 그 배경과 근원을 분석했다. 역사의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결국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이 결정적인 배경이다.
물론 그 선언에 걸 맞는 국민국가가 세워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왜냐면 있던 나라를 복구한 것이 아니라 전혀 상이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국해 이만한 성취를 이뤘다. 적어도 1987년까지 40년간은 나라 만들기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러 마찰과 비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가 칭찬할만한 성취를 이뤄냈다. 그 몇 가지 조건이 바로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우문을 던져본다. 근대적인 국민이 있었기 때문에 근대국가가 성공했나, 아니면 근대국가가 성공해서 그런 국민이 만들어졌나?
국민이 있어 국가가 성립된다는 관념은 맞지 않다. 당시 자유민주주의가 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나라를 세우는 것은 국민이 아니다. 나라를 세우는 것은 소수의 역사의 창조세력이 세운다. 그리고 인구의 다수를 그 새로운 나라의 국민으로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나라 만들기에 성공하게 된다. 이 나라 만들기에 성공해야 애국심을 가진 국민들 생겨나기 시작한다. 대학생들은 국민 없이 무슨 국가냐는 생각을 하는데, 먼저 국가적 정체성(identity)이 확립 되어야 한다.
1950년대에도 정부 형태가 분명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대통령 중심제를 통한 삼권 분립의 정부형태를 확장하는 것부터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건국 당시 정부 형태는 국회 중심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이것은 귀족과두제적 정치 형태’라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결국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 직선제, 행정부와 국회의 분리라는 행정 개편이 가능했다. 이것이 시작된 것이 1952년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50년대 내내 이승만의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치 투쟁을 했다.
나라 만들기는 국가의 토대를 하나씩 시간을 두고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정부 형태를 어떻게 꾸려 갈 것인가 조차도 시간을 두고 합의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타협되지 않은 주장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적 정치 제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그저 독재와 민주로 양분할 수 없다. 그런 이분법은 몰역사적 태도이다.
-역사적으로 정부 형태가 최종 결정된 것은 언제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 중심제를 내세웠지만 부정선거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4·19가 일어났다. 장면 정권이 들어서 내각제를 내세다. 그리고 다시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출마를 하면서 소위 4차 헌법 개정을 했는데, 대통령 직선제 정부 형태를 복구 했다. 민주당도 당시 반대 하지 않았다. 거기서 우리나라 정부 형태는 최종 결정이 났다.
1972년에 박정희가 다시 쿠데타적 행위를 통해 대통령 간선제를 도입했다. 이후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1987년 헌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완성했다. 정부형태 하나 완성하는데도 4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봐야 한다.
-경제개발 문제를 보자. 경제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완성된 것은 언제였다고 보는가?
경제개발이 국정의 제1의 어젠다로 떠오른 것은 1960년대 민주당 정부 이전부터다. 사실 경제개발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도 국가적으로 두 가지 의견이 존재했다.
한쪽에선 대기업을 먼저 키우고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되고, 수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쪽에선 농업과 중소기업을 발전시키고 내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외 지양적인 수출 주도형 공업화와 내포적 자립 경제 건설이 충돌한 것이다. 박정희는 수출주도형으로 나가는 반면 야당은 1965년부터 중소기업과 농업을 중심으로 한 내포적 공업화론을 이야기 했다.
내포적 공업화론을 주장해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의 방향이 옳았다고 평가했다. 대중경제론을 주장해온 김 전 대통령의 변화가 바로 우리 경제발전 노선에 대한 근본주의적 논쟁이 끝났음을 말해준다.
이런 식으로 역사라는 것은 처음부터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셔널 아이덴터티’를 가지고 경제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충돌과 모색의 과정을 거친다.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지도자의 생각이 옳았던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공적 공력을 사적 이익의 추구로 활용 하지 않았다. 그들은 청렴하게 살았다. 그들을 제대로 평가를 해야 하고 그들이 한 일은 정확히 판단해야 된다.
–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데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국민통합이 되어 있지 않다. 1987년대까지 나라 만들기는 일단락 됐다. 그러나 정신까지 통합된 국가적 정체성은 아직 멀었다. 아직도 수많은 과제와 도전을 앞에 두고 있다. 그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통합이 필수다. 국민통합이 가장 핵심적인 것이 통일방안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분리돼 있다. 보수나 진보가 통일 정책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박정희도 대통령이 되고 5년이 지나서야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진 자신이 좌충우돌하던 때였다. 5년 단임제로 뭔가 잘할 거라고 생각 하진 않는다. 역사발전에 작은 돌을 하나 올려놓는다는 정도의 성취가 있다면 충분하다. 박 대통령이 지금이야 의욕이 많겠지만 곧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적응하고 헤매다 보면 임기는 지나간다.
박 대통령의 잘 정리된 정치 철학이 유세과정이나 집권 초기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5년 단임제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대북정책만 잘 정리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