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수령배신’… 장례도 못치른 한맺힌 인민군 청년

▲ 김정일의 부대 방문을 환영하는 인민군 제109부대 산하 군인들 ⓒ연합

며칠 전 한 여자 연예인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자살했나하는 궁금증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북한에서도 같은 처지의 자살은 아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끓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거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길을 택하게 된다.

특히 1994년 이후로는 악화된 식량 사정으로 인해 자살률이 더욱 높아졌다. 탈북하는 도중에 잡혀 북송된 후 모진 고문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알고 있던 한 인민군인도 젊은 나이에 자살이란 극단적인 길을 택했다. 평양 근처 평성시에서 태어난 김경수(가명)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의 나이에 군에 입대해 함경북도에서 군복무 생활을 했다.

북한에서 근 10년이라는 군 생활 동안 제일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90년대 말까지만해도 입당은 군인들의 한결같은 소원이고 소망이었다.

입당 후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갈 수 있고 출세길도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인들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을 목표로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아낌없이 바쳤다. 김경수도 그 소원을 가지고 군복무를 열심히 하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일 년에 몇 번 없는 조선노동당 입당 신청기간이 다가왔다. 김경수도 본인이 충분히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판단아래 입당 청원을 했다.

입당청원서를 내고 결과가 발표되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아무 소식이 없자 군 간부에게 넌지시 결과를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입당보류’. 그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식이었다.

10년 기다림이 수포로…우울증 끝에 권총 자살

‘군복무를 열심히 한 것은 알지만 조선노동당은 성스럽고 영광스러운 곳으로 아무 사람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는 것이 입당 보류의 이유였다. 김경식은 할어버니가 6.25 전쟁 때 한국으로 넘어간 ‘월남자 가족’으로 집안 성분이 좋지 않았다.

입당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한번 더 용기를 내 “그래도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안되겠는가”라고 매달려 봤지만 “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 보는 사람이 없다, 열심도 중요하지만 집안 토대도 좋아야지” 라는 매몰찬 답변만 돌아왔다.

군 생활을 모범적으로 해왔던 김경수는 이 일이 있고난 후 우울중과 함께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나라에 대한 원망으로 끝내 자신의 근무지에서 총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열심히 군복무를 해도 출신성분 때문에 조선노동당에 가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죽음이란 막다른 길로 내몬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북한에서는 자살이 ‘수령과 나라에 대한 배신’이라며 죽은 사람에게 죄명을 덧씌운다는 것이다. ‘수령과 나라의 배신자’는 북한에서 가장 엄한 죄 중 하나이다. ‘중죄를 지은 자’이니만큼 가족들에게 장례도 못 치르게 하고 시체도 보지 못하게 했다. 또 그것도 모자라서 가족들은 살던 곳에서 추방당해야만 했다.

부모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에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대로 죽을 자유도 없는 북한의 현실은 더 비참할 뿐이다. 정권이 사소한 죄로 주민들을 공개 처형하는 것은 괜찮고, 자기의 손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게는 죄를 씌우는 이것이 김정일 정권의 독재가 보여주는 북한의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자살이 사회문제로까지 거론되면서 아까운 목숨을 자살로 내 몬 사회를 개선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북한에서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남은 가족들을 걱정 해야만하는 처지다. 한 마디로 김정일은 인민들에게’자살’할 자유마저도 앗아갔다.

한성주(28)/평양금성정치대학 재학중 탈북(2004년 입국)

※ 대학생 웹진 바이트(www.i-bait.com)의 양해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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