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상대 맞게 무역방식 바꿔야”

북한의 계간 경제전문지 ‘경제연구’ 최근호(2008.1호)가 자본주의 시장을 주로 상대하는 현실적 조건에 맞게 북한의 무역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이 잡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본주의 시장을 주로 대상(상대)해야 하는 현실적 조건에 맞게 사회주의 시장을 기본으로 하던 지난날의 무역방식을 우리 식으로 새롭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이 같이 주장했다.

‘경제연구’는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북한)에 대한 제압 책동을 짓부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우리는 그에 맞게 수출입 구조와 무역방식을 우리 식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시장이 무너지면서 대외 경제관계의 주된 대상이 자본주의 시장으로 바뀐 조건에서 최대한 실리를 보장할 수 있게 무역방법을 우리 식으로 개선하는 것은 대외무역 발전의 현실적 요구”라고 경제연구는 강조했다.

경제연구는 특히 “사회주의 나라가 자본주의 나라들과 무역을 발전시킨다고 사회주의 경제의 자립적 기초가 약화되는 것도, 자본주의 경제에 말려들어가는 것도 아니다”면서 “사회주의 원칙과 나라의 구체적 형편에 맞는 묘술(妙術)을 찾아 대외 경제거래를 능동적으로 전개해나가면 얼마든지 자본주의 나라들과 경제거래를 자립경제를 강화하는 데 효과 있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연구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에 의거해 수출입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원료를 그대로 팔지 말고 되도록 가공해서 팔 것 ▲국제시장에서 인기 있는 수출품을 생산할 것 ▲세계시장의 패권을 쥐고 독점할 수 있는 제품을 선정할 것 등의 ‘수출 원칙’을 제시했다.

경제연구는 가공무역 강화 원칙과 관련, “원료자원을 가공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그대로 팔다가는 나라가 독점자본가들의 원료 공급지가 될 수 있는 애국주의가 없는 행동”이라며 수출품 중 가공제품의 비중을 높이고, 원료 가공 수출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연구는 또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의 수출 원칙과 관련, “상대적으로 원료, 자재, 연료, 동력을 적게 소비하면서도 보다 세밀하고 재치 있는 작업 기능을 갖고 있고, 국제시장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며 “자본주의 시장에서 인기 있는” 각종 수공∙세공품과 농산물, 프로그램 수출을 권장했다.

경제연구는 아울러 “보다 적은 외화로 더 많은 설비, 자재, 소비품을 수입하도록 수입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직접무역만이 아닌 여러 가지 무역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며 가공료를 받는 ‘삯가공무역’, 수입품을 가공 없이 수출하는 ‘되거리무역’, 물물교환인 ‘맞바꿈 무역’, 관세 없이 수입한 원료를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보세가공무역’을 능동적으로 배합할 것을 경제연구는 제시했다.

그러나 이 잡지는 “개별단위들이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각기 자본가들과 거래하게 되면 제국주의자들이 바라는 대로 ‘개혁’, ‘개방’이 되고 나라의 경제가 자유화, 자본주의화 될 수 있다”고 경계하며 “대외무역은 국가가 틀어쥐고 통일적 지도와 통제 밑에 계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여러 단위에서 무역을 해도 반드시 국가의 승인을 받고, 국가에서 규정한 제도와 질서에 따라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중앙 정부에 의한 무역회사별 주요 수출입품 편성과 거래가격 일원화 등이 필요하다고 경제연구는 말했다.

경제연구는 김정일 위원장이 “여러 나라와 지역을 대상으로 대외무역을 폭넓게 벌이는 문제, 신용제일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문제, 수출품의 질을 높이는 문제 등 모든 이론∙실천적 문제들”을 지적함으로써 북한의 대외무역이 “경제의 ‘자유화’, ‘개혁’, ‘개방’의 자그마한 요소도 허용함이 없이” 자주적인 대외무역을 하도록 하는 지침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경제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와의 무역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북한식 사회주의에 맞는 ‘묘술’ 찾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또한 자본주의 식 ‘개혁·개방’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히고, 김정일 유일지도체제 유지 원칙도 밝혔다는 것이다.

올초 신년공동사설도 “모든 경제사업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 밑에 조직∙전개해 나가는 강한 규율과 질서를 세워야 한다”면서도 “우리 당의 선군영도 업적을 지침으로 삼고 모든 사업을 위대한 장군님 식대로 해나가는 데 있다”고 주장해 김정일 개인의 명령형 경제를 유지해가겠다는 의미를 숨기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한편으론 ‘우리 식 사회주의’ 경제발전을 강조하면서도 국제경제 관계를 강조했다. 특히 베트남, 중국 식 개혁개방에 큰 관심을 보여 주목됐다. 올초 신년공동사설에서도 “강성대국 건설의 주공 전선은 경제전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지난해 10월 사설을 통해 “세계 속에 조선이 있다” “우리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국제경제 관계를 무시한 채 경제건설을 다그치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베트남 ‘도이 모이 식’ 개혁개방에 관심을 가졌다. 이에 대해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한 간담회에서 “북한 김정일은 중국식 개혁개방에 겁을 먹으면서 베트남 식 개혁개방을 따라 배우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직까지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로 해석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만 전면적 개혁·개방은 아니더라도 체제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의 제한적 개혁 조치는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사회주의 무역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무역을 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얘기해 왔다”면서 “베트남의 ‘도이 모이’나 중국식 개혁개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동 연구원은 이어 “자본주의 시장 개척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 이외의 큰 의미는 없다”며 “아직까지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원칙을 변화시키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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