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잣대’보다 무서운 ‘자기 멋대로’식 北해석

“남쪽에 고질병이 있다. 북쪽과 관련해서다. 엄연히 주권국가인 북쪽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고서는 자기 말이 먹혀들어가지 않으면 손가락질 해댄다. 북쪽이 훈수대로 따라간다면 통일을 운위할 필요도 없다.”



정일용 연합뉴스 기획위원이 13일 ‘미디어 오늘’에 기고한 글이다. 정 위원은 이날 ‘자기 잣대로 북을 재단 말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통일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과정을 밟고 있는데 마치 통일된 양 착각하는 이 증세는 지식인층에게도 예외가 아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른바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한동안 논쟁의 중심에 섰던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론’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눈으로 북한을 이해하자’는 주장이다.



그럼 정 위원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하나씩 뜯어보자. 그는 먼저 “‘3대 세습을 비판해야 한다’는 주제로 이른바 진보진영 내부에서 토론이 뜨겁다”면서 “그런데 ‘3대 세습’의 당사자인 북쪽에는 아예 이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당사자는 쏙 빼놓고 국외자가 나서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역시나 턱없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오만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북한에서 ‘세습’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그러니 북한 인민들 사이에서도 ‘3대 세습’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습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북한 인민들 사이에선 “집안사람들이 다 해먹네”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온다.



단지 ‘3대 세습’이란 용어가 익숙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않아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거부감이 남한과 비교해 적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등장과 그에 대한 당국의 미화는 인민들 사이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 위원은 “북쪽에는 ‘세습’의 개념이 없다. 자동으로 어떤 직위가 승계되는 ‘세습’은 없으며 나름의 엄정한 절차를 밟아 진행하는 ‘후계 계승’이 있을 뿐이다”면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후계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쪽에 세습 개념이 없다”는 것과 남한 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세습을 비판하는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습의 개념은 없을지 몰라도 ‘세습은 있다’는 것이 가장 올바른 표현이 아닐까?



또한 “엄정한 절차를 밟은 ‘후계 계승’만 있다”는 주장은 무얼 말하는가? ‘후계 계승’이든 ‘세습’이든 표현만 다르지 문제의 본질은 독재권력의 연장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지난달 북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27살 된 젊은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수여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힌 것은 ‘엄정한 절차’인가? 민주적인가? 참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이렇게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이 아닌 ‘북한의 시각”북한식 잣대’로 바라보라고 하는 것일 게다. 북한식 잣대로 본다해도 27살 ‘청년 대장’은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 김정일도 그 나이에 달지 못한 별을….



그는 “김정일 총비서의 경우 아버지의 후광은 부차적이고 기실은 자신의 능력이 후계자 발탁의 제1요인이었다”며 “아버지의 후광이 있었다 하더라도 능력이 없었으면 안 됐다는 것”이라는 주장은 차라리 궤변에 가깝다.



그가 말하는 김정일의 “능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권력쟁취를 위해 보여준 능력이라곤, 김일성 반대파 중 하나였던 ‘갑산파’를 숙청한 것과 작은아버지 김영주 유배, 계모 김성애 숙청, 이복동생 김평일 등을 ‘곁가지’로 분류해 평생 해외를 떠돌게 만든 것 정도가 아닐까?



물론 권력을 향한 김정일의 집념이 지금의 자리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김일성의 후광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 위원은 또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의 능력이 여실히 입증됐다”며 “전문가란 전문가들 모두가 입 모아 ‘3일, 3개월, 3년 내 자멸’을 떠들 때 보란 듯이 나라를 지켜낸 업적은 솔직히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강변했다.



북한 인민들조차도 김일성에 대한 지지와 향수는 높으나 김정일에 대한 업적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김정일은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200만 명이 넘는 인민을 아사로 내몬 장본인이다. 인민들을 굶겨 죽이는 댓가로 정권을 살렸다. 그런 능력도 능력이라면 세상 최고의 능력이라해도 할말이 없다.



단순히 정권과 체제를 지켜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망발에 가깝다.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를 지켜낸 것은 김정일의 능력이 아니라 남한 ‘햇볕정책’에 있다. 당시 무조건적인 대북식량지원이 없었다면 김정일의 정권유지는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지난 10일 타계한 故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도 “지난 97년 내가 북한을 떠날 때 5년이면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후 국제조건이 바뀌어 북한붕괴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 위원은 “일부에서는 왜 진보주의 운운하며 북쪽 인권상황에는 침묵하느냐”면서 “그러나 인권문제는 ‘보편적 가치’로 간단히 재단하기 어렵다. 보편적 가치로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권 중의 인권이라면 먹을 권리, 식량권, 또는 생존권이다. 인권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고 자책하기에 앞서 식량부터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인권주의자의 참모습”이라며 이른바 진보·좌파 진영의 북한인권 침묵을 합리화했다.



우선 인권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도 일본에도 유럽에도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권문제는 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발언하고 활동하는 정치인이 있고, 단체가 있고 운동가들이 있다. 그게 바로 민주국가와 독재국가의 차이다.



그러나 북한을 보라. 아무도 없다.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라고 요구하는 정치인도 단체도 개인도 북한 내부에는 없다. 앞에서 ‘세습’이란 개념이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북한에는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다. 인권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권문제가 정말 너무나도 심각한데 그 누구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게 바로 북한이다.



“식량부터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인권주의자의 참모습”이란 주장 또한 논리적이지 못하다. 우선 대북 식량지원이 중단된 원인은 북한에게 있다.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피살됐고 천안함 사태로 우리 수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문제를 차지하고서라도 대북 식량지원에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그것은 ‘투명한 분배’를 위한 모니터링 강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매년 북한에 30~40만 톤의 대북식량지원이 이뤄졌지만 모니터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적어도 진보·좌파 진영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에 앞서 투명한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북한에 모니터링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식량을 지원하면서 우리가 지원한 식량이 누구에게 가는지 모르고 있다. 오히려 북한에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꼴이었다.



근래에 들어 국제사회는 무조건적인 아프리카 원조가 그 나라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무조건적인 원조는 부패한 권력의 부(富)만 창출할 뿐 국민들의 삶의 질은 향상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당장이라도 개혁·개방을 한다면 인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핵무기 등으로 주변국을 협박해 식량을 뜯어낸다. 이런 식으로는 북한의 식량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인민들의 식량권 해결의 책임은 이명박 정부가 아닌 바로 김정일에게 있다.



남한사회의 진보·좌파들은 북한 식량난의 원인이 어디에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규명은 하지 않고 남한 정부를 향한 비난만 늘어놓는다. 한심할 따름이다.



그는 “북쪽에서 후계자 공개는 그럴만한 준비가 갖춰져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12년 강성대국 대문을 열어 젖히는 해에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이번에 김정은 대장이 등장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내놨다.



그의 말대로 “추론”에 불과하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한 나라를 이끌만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 인민들에게 김정은의 존재가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의 리더십이 평가받을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는 추론은 타당성이 없다.



하루 이틀 사이에 결정된 문제는 아니겠지만 김정일조차도 공직에 등장해 후계자로 선포되기까지 16년이 걸린 일을 김정은은 불과 몇 년 만에 이루려는 모양새다. 김정은은 아직 정치적으로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에게 완전한 후계세습은 도박과도 같다.



그리고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란 게 무엇이 있을까? ‘개혁·개방’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개혁·개방’, 물론 시도한다면 좋겠지만 체제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강행할 수 있을까?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겨놓은 독재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민들은 그의 지휘권을 인정할까? 기자는 “네”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정 위원은 이어 “만약 이 후계자가 나서 북 주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남북 간의 관계가 진전되며 평화통일에도 기여하게 된다면 그 때에도 ‘3대 세습’ 운운하며 도리질을 할 것인가”라며, 한편의 환타지 소설을 쓰고 있다.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라곤 ‘독재 기술’뿐인데 무슨 능력으로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단 말인가. 만의 하나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그러면서 “3대 세습을 비판하려면 그 결과를 지켜보고 난 뒤에 하는 게 적절하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기자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람의 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비판은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엔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다면 정 위원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궁금하다. “정 위원님 이명박 정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북정책 비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 아닙니까? 결과를 봐야죠.”



이런 황당무계한 주장도 있다. “미국의 부시 부자 대통령, 대만의 장제스 총통 부자, 싱가포르의 리콴유 부자 등 선진국에서도 세습이 이뤄지고 있다”며 “세계 유일의 3대 세습이라는데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60여 년간 지속되는 ‘친미정권의 세습’을 지겹도록 지켜보고 있다.”


진보·좌파진영 일부 궤변론자들이 여타 다른 나라들에서도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북한 세습만 문제삼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한심하기 짝이없다. 북한의 독재세습을 옹호하기 위한 주장이라고 하기엔 참 궁색하다. 적어도 그 나라들은 인민들을 굶겨죽이지는 않는다. 


또한 국민들이 뽑은 미국의 부시 정권을 북한의 세습과 연결 짓는 것도 그렇지만 지난 60여 년의 남한 정부 성격을 ‘친미’정권으로 규정하는 것도 편협한 역사관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을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적어도 “반미면 어때”라며 공공연히 말하고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안해 미국의 감정을 자극했던 노 전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정 위원은 끝으로 “나라마다 정치체제가 다르고 특색 있는 작동방식이 있다. 남쪽의 시각으로 재단하고 판단해서는 북쪽으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없다. 왜 호응을 얻어야 하느냐고? 같이 함께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쪽의 시각’으로 한번 묻고 싶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을 목표로 했는데, 지금 북한은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이 실현되고 있는가? 북한 인민들의 운명의 주인은 누구인가?



정 위원의 주장대로 “같이 함께 살아야 하는 대상””진짜 호응을 얻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고민해 보심이 어떨런지 정중히 요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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