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도 `자갈도’에서 본보기 道로

북한의 북부 산간지대인 자강도는 자연지리적으로 척박한 지역이지만 ‘본보기 도(道)’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강도는 북한이 1949년 평안북도 동부지역과 함경남도 장진군 일부를 통합, 신설한 도로서 자성(慈城)과 강계(江界)의 앞 글자를 따 명명했다.

땅이 척박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자갈도’라고 불린 자강도가 모범적인 도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 주민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 때문이다.

자강도는 1990년대 중.후반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던 ‘고난의 행군’시기 ‘강계정신’을 창조한 고장으로 유명하다.

북한은 1997년도 경제구호로 ‘고난의 행군’을 제시하고 1998년을 ‘사회주의 강행군의 해’로 선언했으며 강행군 정신으로 1950년대 ‘천리마 정신’과 같은 ‘강계의 혁명정신’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1998년 1월 중순 약 1주일 간에 걸쳐 자강도 경제부문 시찰 때 “전후 시련의 시기에 강선(강선제강소.현재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노동계급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강도에서는 오늘의 강행군의 앞장에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봉화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며 ‘강계정신’을 제시했다.

‘강계정신’은 김일성 주석 사후 김 위원장과 연관지어 제시된 최초의 경제선동 모토이다. 이러한 정신이 자강도에서 창조되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중요시하는 전력과 식량문제와 관련, 중소형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했고 이곳의 두벌농사(이모작), 세벌농사(삼모작) 경험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데 따른 것이다.

자강도에는 현재 230여 개의 중소형 발전소가 건설돼 있다.

또 자연지리적 조건과 기후가 매우 불리한 데다 이 지역 주민들이 못 먹고 못살았다는 상징성과 함께 김일성 주석이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을 걸은 지역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 자강도 사람들은 식량이 부족해 이탄(泥炭)과 풀뿌리로 연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나는 고난의 행군을 어떻게 승리적으로 결속짓겠는가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하다가 자강도를 추켜세워 본보기를 창조할 것을 결심했다. 그 전날 사람들이 ‘자갈도’라고까지 한 자강도는 어느 도보다도 자연지리적 조건이 불리하였다”고 술회(2001년 4월22일 조선중앙방송 보도)했다.

그는 1998년 이후 2001년까지 4년 동안 무려 9차례나 자강도를 직접 방문, 자강도를 ‘본보기 도’로 가꾸도록 신경을 썼다.

자강도가 본보기 도로 된 데는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연형묵이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일한 것도 한 몫 차지한다.

연 국방위 부위원장은 1992년 말부터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활동하다 올해 6월 경 도당 책임비서에서 물러났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29일 김 위원장이 2000년 8월 29∼31일 자강도를 시찰하면서 ‘자강도 사람들처럼 도와 시.군의 살림살이를 잘 꾸려나가자’라는 문헌을 발표했다며 이 문헌에서 자강도의 모범을 치하하고 “전력생산을 늘릴 데 대한 문제, 공장.기업소에서 생산을 정상화할 데 대한 문제를 비롯해 도와 시.군에서 살림살이를 잘 꾸려나갈 앞길을 천리혜안의 예지로 환히 밝혀주었다”고 소개했다.

북한은 2001년 자강도민들의 활약상을 담은 ‘자강도 사람들’(1∼2부)이라는 영화를 제작, 보급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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