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낙서사건 北주민 의식 변화 표증이다

북한 내부에서 최근 잇따라 발생한 김정일과 북한 당국에 대한 비난 낙서는 소수의 체제불만 행동이지만 북한 주민 전반에서 일어난 사상적 변화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북한의 중심지인 평양에 있는 철도대학 담장에 ‘김정일 사람 굶겨 죽인 독재자, 박정희 경제 발전시킨 독재자’라는 비난 낙서, 19일 양강도 혜산에서는 선거벽보에 ‘리명박을 지지 한다’는 낙서가 발견됐다. 


이 두 낙서 내용의 특징은 단순히 북한 당국을 비난한 데 머물지 않고 남한과의 비교를 통해 현 집권세력을 비난했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는 화폐개혁 이후 당국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들끓었고, 공개장소에서도 ‘국가가 해준 것이 뭐냐’라는 수준의 체제 비난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대문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주상성 인민보안상이 해임된 바 있다.


최근 주민들은 당국을 비난하는 말을 듣고도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보안원들도 민심을 고려해 적극적인 체포나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직접 거론하는 행위는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시기이던 90년대 중반에는 정부의 식량공급만 기대하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다가 닥쳐온 식량난에 수수방관하며 200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



북한의 장마당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됐고 국가에 의지해서는 살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 내렸다. 여기에 북중국경을 통해 들어간 외부 정보와 한류 열풍의 결과 북한과 남한을 비교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북한 당국이 2009년 실시한 화폐개혁 때문에 당국에 대한 불신은 극대화 됐다. 북한이 2012년을 두고 내건 강성대국 구호를 믿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 



갑작스런 화폐개혁으로 하루 아침에  돈을 잃은 주민들 속에서는 허탈감에 우울증 증세까지 겹치며 집단자살을 선택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최근 낙서 사건은 북한 주민들의 분노와 사고의 전환, 정보의 확대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평양 철도대학에 적대국으로 교육 받아온 한국 전 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되고, 선거자 명부에 현 남한 대통령의 이름이 낙서로 발견되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제 3자에게 또 다른 행동을 결심할 용기를 북돋우게 된다.



올해 초 국내에 들어온 북한 보위기관 출신 탈북자 권혁기(가명·60대) 씨는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정말 다치면 터질 정도로 정부에 대한 한이 쌓였다”면서 “주민들은 예전과 달리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서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만을 터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 씨는 “단적으로 이러한 불만에 의문을 표시하거나 신고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의식이 크게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들은 국가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어느 개인이 적대국가의 대통령 이름을 써서 정부나 보안기관을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에서 말하는 ‘간첩단 사건’이라는 것은 주민들에게 외부 사주를 받은 행동이고 가혹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주기 위해 부풀린 말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군중감시망을 4중으로 촘촘하게 세워왔다. 또한 연좌제를 통해 저항의 의지마저 잘라왔다. 북한은 ①당기관 ②국가안전보위부 ③인민보안성 ④인민반을 통해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감시해왔기 때문에 친한 친구끼리도 정부를 비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공공연한 정부 비난과 낙서 사건은 이러한 감시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는 김정일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정책과는 상충된다. 이는 통치체제의 정당성을 상실한 당국자들의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낙서 사건이 조직적으로 진행된 정황은 아직 없다. 단 기간 내에 북한 내부에 시위나 소요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낙서 사건은 주민들의 의식이 반체제(反體制) 친남화(親南化)하고 있다는 중대한 증거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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