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親中 행보…김정일의 변신 ‘주목’

북한과 중국 사이에 화기애애한 온기가 감돌고 있다.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양국간에 감돌았던 냉기를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북중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이에 대한 구체적 반응이 없었던 북한도 올해 저우언라이(周恩來) 탄생 110주년 행사를 성대히 개최한데 이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진행된 베이징(北京)올림픽 성화 봉송에 ‘올인’하는 성의를 보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중국과 밀월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는 올해 3월1일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중 양국은 한 집안과 같고 중국대사관 방문은 친척집에 온 것과 같다”고 언급했다.

또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5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류샤오밍(劉曉明) 중국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베이징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면서 “중국 인민의 일은 바로 조선 인민의 일”이라고까지 했다.

김 상임위원장이 이날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류 대사를 대신 만났다는 점에서 “중국 인민의 일은 바로 조선 인민의 일”이라는 언급은 사실상 김 위원장 자신의 발언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에 대해 ‘일가’ 또는 ‘친척’이라는 표현도 아끼지 않고 있는 김 위원장의 친중 행보는 과거 그의 전력에 비춰보면 변신에 가까운 파격적인 제스처로 비쳐진다.

그는 1985년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노동당 회의를 소집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을 수정주의자로 강도높게 비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이 추후 김일성 주석과 덩샤오핑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가면서 두 사람은 크게 격분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1994년 11월 발표한 논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통해 또 한번 중국에 당혹감을 안겨줬다.

중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이와 관련, “당시 중국에서 김 위원장의 논문이 사실상 중국의 사회주의와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중국은 자국의 역대 지도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과거에 간간이 중국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곤 했던 김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에 대해 내심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북중 양국은 김 주석 사후 99년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중국 방문 직전까지 지도자 교류가 거의 전무했을 정도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2000년 5월 13년만에 중국 방문길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화해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그의 방문은 양국 사이의 전통으로 수립됐던 사전통보 외교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중국은 받아들였다.

김 위원장은 또 2006년 1월까지 4차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과거 중국식 개혁개방을 수정주의로 비판하던 과거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중국 개혁개방의 성과인 급속한 경제발전을 치하하는 발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2006년 10월 핵실험 직후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자 “중국도 믿을 수 없다”며 불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후 2차례 중국대사관을 직접 방문하는 ‘준(準) 정상외교’를 통해 중국과 관계를 관리해나갔다.

중국의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친중 행보는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 원조도 얻고 한·미·일 동맹강화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필요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역시 북미관계 개선에 대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있어 양국 관계는 당분간 밀월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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