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석의 일기②] “임업장에서”

1997년 1월 18일 나와 희선이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넘어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땅에서 이제부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일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만난 할머니가 친절한 사람이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조선말이 통하는 것도 마음의 큰 힘이 되었지요. 여기까지는 희선이가 썼습니다. 그 후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와 희선이는 할머니가 알려 주신대로 걸어갔습니다. 밖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나의 마음은 어제보다 많이 따뜻해져 있었습니다.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 사람과 차가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느 사람이든지 우리들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어떤 사람은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다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 차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북조선 애들이구나, 빨리 가거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옷차림이 더럽고 흉해서 한번 보자마자 바로 북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우리는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잠깐 동안은 사람이나 차가 오는 것 같으면 길 옆 수풀 속에 숨어버렸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지프차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두 명의 남자가 차에서 내려 우리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군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경관같이 보였습니다.

“차에 타라!”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왠지 도망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순순히 차에 올라탔고, 차는 산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북조선에 돌려보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와 선희는 너무 실망해서 더 이상 말할 기력조차 없어졌습니다. 차는 산중에 있는 임업장(나무를 벌목하는 작업장)같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큰 오두막집이 있고 그 옆에는 벌목한 나무를 실은 트럭 몇 대가 서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에겐 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겁을 먹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차에 있던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오너라”고 했습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거기에는 남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몇 사람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한 사람이 “북조선에서 왔지?”하고 조선말로 물어왔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나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대답하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속이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이제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며 체념하고 말았습니다. 선희는 머리를 수그린 채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람들은 갑자기 온화한 얼굴이 되어 말했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어린 것들이 불쌍하다. 옷과 신발이 너덜너덜하지 않는가… 밥은 먹었느냐? 부모는 어떻게 된 것이냐? 북조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가?”

야단 맞을 거라고만 알았는데, 조금 안심이 되어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드문드문 떼어가며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가운데 두고, 여러 사람들이 둘러서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답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까 조선어로 말했던 사람은 우리들이 말 할 때마다 다른 말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 외에도 조선어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말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임업장에는 조선족 사람과 한족(중국에서 제일 많은 민족)사람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몰랐던 말은 「한어(중국어) : 漢語(中國語)」라고 하는데, 이 지방에 살고있는 조선족 사람은 조선어와 한어를 모두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임업장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를 듣고 동정하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들 전부가 북조선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과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 등 북조선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북조선에서 도망 온 사람에게 먹을 것과 돈을 준 적이 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임업장 사람이 식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 입혀 주셨습니다. 음식은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한족 요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어제의 할머니는 “이 지방 사람들은 못 사는 편이다”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중국 사람들은 부자인 것 같았습니다.

The DailyNK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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