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여기는 세탁소인데요.”
그 남자가 컴퓨터 수리점이라고 생각한 가게에는 ‘컴퓨터 클리닝’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컴퓨터를 깨끗이 청소해준다’ 즉, ‘컴퓨터를 고쳐준다’는 나름의 ‘의역’으로 세탁소를 컴퓨터 수리점으로 오해한 것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에 살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점은 바로 ‘외래어’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외래어 덕분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수시로 터진다.
이 ‘세탁소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북한 내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탈북해 현재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주성하 씨다. 그가 북한 생활과 남한 적응기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아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기파랑)를 펴냈다.
저자는 지난 2008년 10월 21일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개설한 그의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들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남한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쉽게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세계에서 몰려오는 쓰레기들을 너무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북한의 주민들과 간부들이야기부터 ‘초코파이’로 남한의 맛을 느끼게 됐다는 사연까지 북한에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곁들이면서 북한의 흥미진진한 비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무단 방북한 임수경 씨에 대해 저자는 “북한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해방시켰다”면서 ‘역설적인’ 극찬을 하고 있다.
책에서 그는 “임수경이 청바지를 입은 채 평양 한복판에서 여자의 몸으로 저렇게 자유분방하고 당당하게 즉석연설을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독재사회에 억눌려 기죽어 살아온 기색이 없었다. 너무도 신기했다”면서 “우리가 그동안 교육받았던 ‘억눌린 한국인’과는 달랐다”고 회고하고 있다.
저자는 임수경이 한국으로 돌아가 옥중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북한매체들의 대대적인 보도를 상기하면서 “북한매체는 한국정부가 무자비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임수경의 옥중편지를 공개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책도 읽고 편지도 쓰는 감옥이 어딨는가’라며 한국에 대해 차츰 ‘이상한 나라’라는 인식이 심어졌다. 이 때문에 북한 매체가 한국의 인권유린에 대해 비판하면서 임수경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할 때 ‘우리는 저런 말할 자격이 코털만큼도 없을 텐데’라고 느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임수경을 북한 주민을 계몽한 여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녀가 철없는 21살에 어떤 생각을 품고 평양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천국으로 인식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남한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자의 서울 적응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세탁소를 찾아가 컴퓨터 수리를 맡겼던 것에서부터 북한에서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개불’을 시켜먹는 한국 여성들에 대한 오해까지 그의 서울 적응기는 흥미진진하다.
저자 본인의 적응기뿐만 아니라 다른 탈북자들의 한국 적응기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가면서 “왜 저기에 의사들을 모아놨는가”라고 말하는 탈북자들부터, “신문에서 큰 손이 구속됐다는데, 한국은 손이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잡아가는 무서운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는 탈북자들까지 그들의 한국 적응기는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남과 북의 문화적 이질감이 상당하다는 점을 느끼게 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흥미 있고 부담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마음 편하게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접해 볼 수 있다. 더욱이 탈북자의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봐야 하는 방향에 대한 제시도 빠트리지 않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