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종전대로?..北화폐개혁 `노림수’ 드러나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 이후에도 노동자, 사무원 등에게 종전 수준대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밝혀 여러 가지 추측성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일 북한의 화폐개혁을 처음으로 확인 보도한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공장 기업소에서 받게 되는 생활비는 종전의 금액 수준을 새로운 화페(화폐)로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북한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전언들이 북한 당국의 이같은 방침을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의 노동자들에게 신권으로 종전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은 실제 임금을 100배 인상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이번 화폐개혁에서 구권의 신권 교환율이 `100대 1’로 결정돼 신권의 가치가 100배 절상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공언한 대로 노동자들의 실제 임금을 100배 인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당국이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 당시 수준으로 물가를 낮추겠다고 조선신보를 통해 밝힌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장 여기에서 현실적으로 상충하는 문제가 드러난다.


`7.1조치’ 당시 북한 당국이 지정한 쌀 가격은 ㎏당 45원 정도였다. 노동자들에게 화폐개혁 이전 수준의 급여(월평균 약 4천원)를 신권으로 지급하고 쌀가격을 `7.1조치’ 당시로 되돌리면 노동자 한 사람 월급으로 대략 90㎏의 쌀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 쌀이 충분히 공급되는 상황이라 해도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이렇게 갑자기 높아지면 쌀가격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이 쌀 1㎏을 45원에 판매하라고 해도 풍부한 구매력을 가진 노동자들이 너도나도 쌀을 사겠다고 나서면 순식간에 쌀값은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쌀을 포함한 모든 재화의 공급이 극도로 부족한 북한의 실정을 감안하면 물가 폭등은 불보듯 뻔하다.


실제로 7년 전 `7.1조치’ 직후에도 국가의 쌀배급 부족이 계속되자 북한 주민들은 시장에서 당국이 정한 가격(㎏당 45원)보다 훨씬 비싸게 식량을 구입했다.


그후 쌀 가격은 2003년에 ㎏ 450원으로 대략 10배가 됐고 이번 화폐 개혁 직전에는 ㎏ 2천200원으로 2002년 대비 49배까지 뛰었다.


결국 노동자들의 급여를 신권으로 종전 수준에 맞춰 지급한다 해도, 비록 명목가치이긴 하지만 갑자기 풍부해진 노동자들의 구매력과 만성적인 재화부족이 맞물리면 북한 시장의 물가는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물가인상 속도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절상된 신권의 가치를 대부분 상쇄할만큼, 다시 말해 신권의 가치가 구권 수준으로 떨어지는 포인트까지 물가가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물론 북한 당국도 이런 예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였지만 북한이 이번 화폐개혁을 하면서 신권의 최고 액면가를 `5천원’으로 구권과 동일하게 맞춘 부분도 이런 분석 틀에서 보면 설명이 된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이 화폐개혁을 하면서 주요 타깃 중 하나로 내세운 `물가 억제’는 대외 선전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당장 일시적으로는 물가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현재의 수준과 비슷하게 회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왜 시장경제 원리로 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일련의 조치들을 풀어놓고 있는 것일까?


크게 봐서 두 가지 대목을 지적하는 분석이 많다.


첫째는 `7.1조치’ 이후 개인 상거래와 같은 `시장경제적 요소’를 활용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그래서 현재는 북한 체제의 잠재적 `위협요소’로까지 부상한 듯한 장사꾼 등 `신흥 부유층’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으로 100배 절상된 신권의 가치가 향후 극심한 인플레로 폭락하면 결국 신흥 부유층이쌓아 놓은 `개인적 부’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신흥 부유층의 몰락이 일반 노동자 등 경제적 중하위 계층에 반사적 위안이 될 것임은 당연하고, 북한 당국에는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7.1조치 이후 북한 사회의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불법행위나 시장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번 `부유층’에 대해 일반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북한이 이번에 모든 상점과 식당들에서 미 달러 등 외화의 사용을 일체 금지한 것도 외화를 만질 일이 거의 없는 일반 주민들의 반응을 의식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 당국이 노린 또 하나의 타깃은 일반 노동자를 우대한다는 `체제 선전’ 효과일 수 있다.


이런 분석은 북한 중앙은행의 조성현 책임부원이 화폐개혁을 처음 보도한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고 노동보수를 받는 근로자를 우대하는 조치”라고 배경을 강조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특히 “노동자, 농민, 사무원 등 절대다수의 근로자들로부터 이번 국가조치가 매우 옳다고 환영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좋은 반영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혀 북한 당국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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