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우파들 ‘북한 음모론’ 공포에서 벗어나라

▲ 12월 16일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앞두고 이명박·정동영 후보의 지지자들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응원하고 있다.

‘음모론’이란 어떤 사건, 정치, 사회, 문화, 역사 사건 등의 원인이 은밀한 조직의 비밀스럽고 치밀한 작전 또는 계략에 있다고 보는 견해를 말한다. 여기에는 엉터리가 적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대표적인 음모론적 사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제국주의와 경찰 국가로 가기 위해 자체적으로 꾸민 음모이다.” ” 전 세계의 큰 사건들은 유태인들의 비밀 조직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유럽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음모론도 퍼져 있다고 하다.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는 1966년에 죽었다. 지금 나오고 있는 폴 매카트니는 닮은 사람일 뿐이고 이를 입증하는 단서들이 비틀즈 노래들 사이에 숨어 있다”

이런 음모론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과거 80년대 좌파 운동권에서는 걸핏하면 ‘미 제국주의 음모’라는 이론이 판을 쳤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이미 확인된 버마 랭군(양곤) 테러 사건, KAL기 폭파 사건도 미국의 음모이고 87년 직선제 개헌도 미국의 음모였다.

이러한 사건들이 음모임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모든 음모의 배후에는 미국의 비밀 정보 기관인 CIA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는 몇 십만의 CIA 요원들이 활약하고 있다는 믿음이 운동권 진영에 팽배해 있었다.

한-미 FTA 음모론 실체 없어

그런데 노무현 집권 기간 동안 음모론이 이제 한나라당과 우파 운동 진영에서도 횡행하게 되었다. 심지어 우파의 대표적 지식인들까지도 이 음모론에 가세하여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다.

2005년 12월 이 모 한나라당 의원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진위논란과 관련해 ‘음모론’을 제기하며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했다. 황우석 논란에 ‘권력형 비리’를 가리기 위한 정권차원의 음모가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가능성’만 제시했다.

또 우파의 대표적 논객 중 한 사람인 조갑제씨는 한-미 FTA 음모론을 개진했다.

“FTA 음모론의 골자는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카드로 현재의 판세를 뒤집기 힘들다고 판단하는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추진을 통해 반미-극좌세력을 결집시킨 후, 이 과정에서 축적된 에너지를 활용해 좌익정권 연장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www.chogabje.com)

이 논객은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성사시키려는 생각은 없고 FTA를 기화로 반미 세력을 결집시키려 한다고 분석한 것이다. 물론 이 분은 그래도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 자신의 오류를 반성하는 글을 올려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음모론식 접근이 나온 이슈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하자’ ‘대연정 하자’ ‘한미전작권 조정하자’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어젠더를 제안할 때마다 우파 진영 내에서는 이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몰아갈려는 경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진짜 음모로 판명된 건 하나도 없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정치권과 언론까지 모두 정략이라고 몰아붙였고 심지어 재집권, 정권 연장 등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결국 여당조차 개헌발의에 사실상 반대하고 나섰다. 우파 내의 음모론이 또 한번 파탄난 것이다.

2007년에 등장한 대통령 후보 테러 음모론

2007년 또 한번의 음모론은 대통령 후보 테러 음모론이다.

“12월 3일부터 12월 19일 사이에 암살이라든지 테러라든지 또는 큰 질병이라든지 해 가지고 유고상태(이명박 후보)가 됐을 때 현재 선거법으로는 대체후보를 낼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회창 총재가 등록을 해놓으면 일종에 스페어 후보가 되는 거니까, 이 말은 본인한테는 상당히 결례가 되는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이회창 후보가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여론도 있어요.” …..김일성이가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서 4번 시도한 적도 있으니까 지금 또 친북세력들이 강하기 때문에 또 우리 노무현 정권의 대공 방어망이 약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비록 작더라도 충분히 대비해야죠.” – 조갑제 (손석희의 시선집중, 10월 26일)

물론 북한의 테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 정부는 항상 이런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테러 음모론은 우파 내의 스페어 후보 논리를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을 정당화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가 유고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순간까지도 사퇴하지 않았다. 스페어 후보 논리를 등에 없고 출마한 후보가 이제는 독자 정당 창당까지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 노무현 정권이 워낙 실정을 하여 이회창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이회창 후보도 15% 이상을 획득하여 우파의 외연이 확대된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이 때문에 스페어 후보 논리를 제기한 쪽도 자신의 논리가 올바르지 않았음에도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이회창 후보로 인한 우파의 분열로 소위 범여권에서 당선되었다면 “북한 테러 음모-스페어 후보론”을 주장한 사람들은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남한 친북세력은 소멸중

이처럼 소위 정통 우파 진영에서 음모론이 횡행하고 또 이 음모론이 통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는 우파 지식인 사회가 이성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 사고는 논리적 정합성과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여전히 우파 진영 내에서는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고 근거가 빈약해도 매 순간 정치적으로 유용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막무가내로 옹호하는 경향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배경에는 우파 시민사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고 우파 운동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파 시민사회가 합리성에 기반하기 보다는 정치적 당파성에 더 의존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우파가 북한 정권과 한국의 친북 좌파의 실체를 잘 모르고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일부 우파 세력들은 김정일과 남한의 친북좌파가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상은 소멸해 가고 있는 세력들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그들의 실체를 과대 평가하다보니 북한의 테러 음모도 하나의 조그만 가능성이 아니라 대단히 높은 가능성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페어 후보론 같은 기괴한 이론도 나오는 것이다.

아무튼 일부 우파들은 이번 기회에 비이성적 음모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자신들의 비이성적 음모론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하마터면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힐 뻔했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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