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사건’ 재심 결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이기택 부장판사)는 27일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형사사건 재심의 경우 검찰이 3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즉시항고)하지 않으면 법원이 재판 일정을 잡아 심리하게 되므로 인혁당 사건은 30년만에 법정에서 진상이 재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보면 재심 대상 판결의 대상이 되는 공소사실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과 경찰관이 수사과정에 피고인들에 대해 독직폭행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며 당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의해 선고된 15,16호 판결 중 우홍선.송상진.서도원.하재완.이수병.김용원.도예종씨에 대한 선고 부분과 14,17,18호 판결 중 여정남씨에 대한 선고 부분에 대해 재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의 주된 사유로 당시 수사과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해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자행됐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들었다.

초기에는 혐의를 부인하던 피고인들이 특정 시기를 거치면서 범죄 사실을 대부분 자백한 점, 기소 이후에는 모든 피고인이 진술조서 형태로 모든 범죄를 자백한 점, 수사 중 특정 시기에 피고인들이 진통제ㆍ항생제 등 의약품 처방을 받은 점 등이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들과 이해관계가 없는 당시 교도관, 함께 체포됐던 공동 피고인, 변호인 등이 모두 가혹행위에 대해 진술했고 일부 수사관의 경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에도 이런 진술을 한 점에 비춰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들이 범죄사실을 자백한 시기에 특별히 중대한 증거가 발견됐거나 특별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은 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백이 늘고 구체화된 점, 자백의 내용ㆍ시기가 대체로 일치하는 점, 의약품을 처방받은 시기가 일치하는 점에 비춰보면 가혹행위 이외 자백할 만한 다른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사실상 고문에 의한 수사기록 조작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 관할권과 관련해서는 “피고인들은 대통령 긴급조치에 따라 설치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긴급조치가 실효(失效)된 이상 군법 피적용자가 아니다”며 헌법에 따라 일반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피고인들에 대해 공소제기된 범죄지역의 하나인 서울 종로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 합의부가 재심 재판을 맡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당시 반정부 민주화운동에 나선 학생들에 대해 중앙정보부가 남한에서 암약한 인혁당과 연계를 맺고 이를 재건해 공산혁명을 기도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해 1975년 4월9일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사건으로 재판 다음날 사형이 집행돼 `사법살인’으로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