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캐스린 웨더스비 한반도냉전사 연구원

“이번에 서울 가는 것은 옛 공산권 문서가운데 한반도 관련 각종 기록과 자료 발굴ㆍ수집ㆍ연구를 위해 협력할 파트너를 찾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우드로 윌슨센터 ’냉전국제사프로젝트(CWIHP)’의 한반도 책임자 캐스린 웨더서비 연구원은 지난 4일 한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전 우드로 윌슨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CWIHP의 연구를 확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물면서 일민재단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측과 접촉해 협력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6.25때 북한이 송환하지 않은 국군포로에 관한 다른 기록은 없나.

▲선 즈화(Shen Zhihua) 연구원 논문의 자료 출처가 러시아 국방부 문서보관소인데, 연구를 확대하면 분명 더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정부는 국군포로대책위원회를 운영중인데 관련 기록에 대한 협력은.

▲한국 정부측에서 문의해온 것은 없다. 민간이든 정부측이든 이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 자료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기꺼이 협력할 것이다.

–한반도 관련 기록 전반의 발굴ㆍ수집ㆍ연구를 위해 한국측과 협력 상황은.

▲한반도 관련 연구자금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코리아 파운데이션’에서 나왔다. 지금까지는 시작 단계로, 이 연구의 유용성 여부를 알아본 수준이다. 그 결과 연구를 확대할 필요를 확인했으나 재정과 연구원이 부족하다.

러시아와 헝가리 등에는 한국 정부와 직접 협력,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연구 수준은 모르겠다. 한국 정부가 조용히, 비공개적으로 (연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 양곤(랭군) 폭탄 테러 사건 등에 관한 기록은 없나.

▲분명 있을 것이나, 대부분 나라들이 외교문서에 대해 30년 비밀분류 원칙을 갖고 있어 80년대 자료는 구하기 어렵다. 예외적으로 (동독과 같이) 정부가 없어진 곳에선 1989년 혹은 1991년 것까지 최근 기록을 얻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최근 동독 문서보관소에서 비밀경찰 슈타지(국가안보부)의 1987-1989년 문서를 대량 입수했다. 고르바초프가 개방ㆍ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이 안보와 관련, 소련을 믿지 못하고 동독에 더 의존했던 만큼 관련 정보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못 찾았나.

▲그러나 분명히 있다. 동독 자료가 아직 못 본 게 많이 남았고 헝가리도 있고, 알바니아에선 막 시작한 단계이며, 몽골에서도 곧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바니아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북한 주재 체코 대사가 다른 동구권 대사들과 만나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나눈 대화를 설명해줬다면, 그 대화 기록이 엉뚱하게 알바니아에서 발견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연구는 품이 많이 들고 느리게 진행된다. 3년전 시작됐으나 아직 소규모이고, 이제 시작 단계다.

–이들 사건은 대형이어서 북한의 공산 우방들 사이에서 많이 거론됐을 것인데.

▲(독일어 문서철을 보여주며) 1983년 12월8일 슈타지 보고서에 동독 외교부가 북한 외교관을 불러 “무슨 일이냐, 무슨 짓이냐”고 묻자 북한 외교관은 “버마가 우리와 외교관계를 단절한 것은 한국과 미국, 일본의 경제압력 때문이지 그 사건이 북한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요원들이 전두환의 라이벌들을 없애기 위해 저지른 자작극이다”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해서도 북한 외교관들은 지침을 받고 주재국 정부에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이에 앞서 1983년 4월27일 보고서에선 “북한은 압력에 직면해 있다. 정치적으론 한국이 올림픽 유치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군사적으론 주한미군의 뒷받침을 받는 한국에 위협당하고 있다”고 돼 있다. 이것이 랭군 사건의 배경일 수 도 있다.

정말 찾아내야 할 중요 자료는 소련 대사와 김일성간 면담 기록이다. 소련 대사가 그 사건때문에 김일성이나 최소한 외교장관 면담을 신청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4.19후 혼란기에 남한의 사회대중당에 재정 지원을 했다는 기록도 당시 북한의 대남 전략과 관련, 관심사인데.

▲문서보관소에 추가 정보가 있을 수 있으나, 워낙 엄청난 분량이어서 우리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도움될 수 있도록 북한의 대외 정책 변화와 외부세계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사고방식 등에 대한 연구를 우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중요한 북한의 대남 정책 등 남북관계에 관해 훨씬 더 상세한 정보가 있을 것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협력 기관을 찾으려는 것은 한국에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미공개 사진이나 필름 기록은 없나.

▲러시아에 사진과 필름 기록을 위한 별도 보관소가 있으나 아직 그곳까지는 연구 범위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냉전사 연구의 의미는.

▲우선 북한의 핵무기 추구가 언제나 북한의 안보 맥락에서 이뤄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제적 이득을 노린 협상 칩이 아님을 이들 문서는 분명히 알려준다. 옛 공산권 문서들을 보면, 북한이 40년전부터 핵무기를 얻으려 했던 것은 안보를 결코 동맹들에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문서를 보면 소련도, 중국도 진정으로 북한을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자체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북한을 설득하려면 핵무기를 포기해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북한이 왜 핵무기를 개발했느냐를 이해한다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도 의심엔 약이 없는데.

▲불행하게도 그렇지만, 가령 에너지, 수송 등 작지만 실질적인 것에서부터 합의하고 이행하는 새로운 (신뢰의) 경험이 쌓인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그런 접근법을 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있다. 미국도 정책을 바꿀 수 있다. 북한의 대미 의심이 많은 만큼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들이 필요하고, 특히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 당사국을 포괄하는 안보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특정 한 국가의 비중이 작아진다.
북한 관점에선 (안보를)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큰 안전 장치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워싱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