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들에게 총소리를 낼 때가 됐다

이 책은 (사)좋은벗들이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 『사람답게 살고 싶소』, 『고난의 강행군』에 이어 내놓은 탈북자 증언․수기 시리즈다. 이 책에도 역시 기존의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식량난 실태가 가져온 절망스러운 현실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식량난과 관련된 문제만 놓고 본다면 기존에 나왔던 증언이나 수기에 비해 새롭고 특별한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까지 공개되었던 내용을 뛰어넘는 극단적이고 처참한 사건을 이 책을 통해 듣거나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느낌과 충격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

그러나 극심한 식량난과 오랜 기간의 독재정치가 북한의 정치와 경제, 교육, 보건, 문화 등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를 다각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증언이 주로 심각한 북한의 식량난 실태나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안타깝고 끔찍한 사건을 위주로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북한 사람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는 그들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 여정과 생활상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비교적 담담하고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고, 이것이 북한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적지 않은 자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건 폭로가 아니라 그들이 직접 체험하고 살아온 인생과 삶의 현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북한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평화와 통일을 부정하는 행위로 치부하거나 김정일 정권의 대남 전략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남북관계를 근거 없이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남북한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냉정하게 풀어나가지 않으면 수습하기 어려운 난국에 봉착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방향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의 총체적인 현실 인식과 김정일 정권의 대남 전략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가 북한 사회의 총체적인 현실과 김정일 정권의 대남 전략을 추론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무너지는 수령절대주의 사회의 단면

비록 외부의 시각이긴 하지만 북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혀 온 것이 수령절대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일인독재체제였다. 특히, 전 세계인의 지탄을 받고 있는 독재자가 정작 독재의 대상자인 북한 인민들에게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세계인을 전율하게 했으며, 북한 사회의 민주주의는 요원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철옹성 같던 수령숭배사상도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북한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 1999년 초에 북한으로 장사를 나온 중국 사람들이 북한의 상황이 너무도 처참하니까 “이 주제에 무슨 저런 초상화는 잔뜩 걸고 있는가, 나라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어버이 수령이라고 모시고 있는가?”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그 전 같으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큰일 날 소리다!” 했는데, 이제는 코 쥐고 웃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이고 어른이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당원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아이들까지도 그렇다.

북한 사회를 가장 강력하게 지탱해오던 사상의 붕괴 조짐이 사실이라면, 이는 곧 북한 사회의 붕괴가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자발적(?) 충성이 무너진 자리를 감시와 통제를 통해 메우려는 최근 북한 정부의 시책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북한 사회의 감시체제도 예전에 비해 크게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식량난이 겹치면서 북한 통치체제는 이제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통제했던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거수일투족까지 일일이 문제 삼는 철저하고 세부적인 생활과 사상의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신 일정 수준을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하고 가혹한 통제와 탄압을 실시하고 있다. 1995년 하반기부터는 인민들의 동요를 폭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범죄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총살을 시작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오히려 북한 인민들의 민심 이반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인민들에게 총소리를 낼 때가 됐다

오늘날 감시체제가 많이 마비되었다. 그 전에는 어떤 말을 하면 많이 삼가 된 상태에서 했는데, 지금은 일반적으로, 자유자재로 내뱉는 형식이다. 그러나 보위부 특무, 안전부 성원들은 언제나 주위에 있다. 그들은 대중들을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사회주의를 비난하는 소리를 하더라” 하고 상부에 보고한다. 상부에서는 “강택민 배급 따위의 말은 지금 조건이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니까 나쁜 일이 아니지만, 나라를 반대한다거나 어디로 튈 때는 신고하라. 그 외에는 놔둬라”라는 식으로 풀어 주었다. 지도층도 뻔하다. 백성들에게 공급할 게 없으니 풀어준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감시할 기구, 도구, 시키는 사람 자체가 비합법적으로 식량을 해먹기 때문에 그것이 감시되고 보고 되어도 무마된다. 신고해도 필요 없다는 소리가 그 때문이다. 결국 통치체제가 푹푹 썩어 마비형태에 들어갔다.

총소리를 울려야 된다는 간부의 얘기가 있었다지만 총소리를 울려도 할 수 없는 것이 백성들의 형편이다. 1995년 11월에 장마당에서 도둑질을 한 사람에게 총살 시범을 보였다. 1996년 11월 당에서 “인민들에게 총소리를 울릴 때가 되었다”며 범죄자를 닥치는 대로 총살하기 시작했다. 1997년도인가, 어느 대학생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밥상 위에 있는 두부를 훔쳐 먹다 주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들키자 주인을 때렸는데 그 주인이 죽었다. 결국 대학생은 두부 때문에 총살되었다. 그리고 그 일가족 전부가 앓아누웠다. 또 동생 결혼 때문에 도둑질한 교원이 있었는데 친구의 제안으로 도둑질하다가 걸렸다. 평소에 부모에게 효자였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었으므로 아이들이 전부 사형장에 나왔다. “나는 죽을 죄 안 지었다”라고 외치면서 총살당했는데,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전부 “선생님!” 하면서 울부짖었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주민들이 구르마 타고 응급실에 가는 모습, 남한 대학생들의 투쟁하는 모습을 북한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북한에서의 성교육의 현실은 어떤지, 어느 선생님의 수업 내용과 혁명 사상을 응용해가려는 노력 등 북한 생활의 생생한 모습을 옆 볼 수 있다.

편견을 접고 진지한 고민을 하자

마음의 편견을 잠시 접고 있는 그대로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혹시 우리는 통일과 평화의 이름으로 절망과 고통에 휩싸인 동포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 책이 그러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인간의 행복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관심과 실천 의지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The Daily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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