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포로출신 3명, 北가족과 상봉

인민군 포로 출신인 이창식(74)씨는 넷째 동생 이세식씨의 부인 오란옥씨와 조카 리광씨와 상봉했지만 이미 북에 있는 5형제가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금강산 해금강이 고향인 이창식씨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에 입대했다가 포로가 된 뒤 수용소에서 탈출, 고향인 북측으로 송환되지 않았다.

송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이씨는 송환 대상자 조사서에 북으로 가고 싶다고 적었지만 북송 희망을 밝힌 포로들에게 폭행이 가해지자 결국 고향행을 포기했다.

이창식씨는 “북을 택한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렸으며 포로수용소에서 장정들이 모포를 뒤집어 씌우고 곡괭이 자루로 찍고 발로 차며 폭행했다”며 “나도 폭행을 당할 뻔 했는데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때리는 사람들과 같이 서서 고향 가겠다는 사람을 때렸다”고 당시를 솔직히 얘기했다.

이씨는 “이후 수용소를 탈출했는데 그 당시에 제대로 송환이 이뤄졌다면 북쪽으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했다.

50여 년이 흘러 듣게된 동생의 사망 소식은 그의 가슴을 더욱 옥죄게 한다. 넷째 동생의 부인 오란옥씨는 “동생들이 이렇게 하나도 없으리라고 믿고 싶지 않았겠지요? 우리도 그랬습니다”라고 이창식씨를 달랬다.

조카 리광씨는 북쪽에서의 생활이 어려울까 걱정하는 삼촌에게 “내가 일만 잘하면 국가가 다 알아서 해준다”며 “염려 놓으시라”고 말했다.

제수씨와 낯선 조카 앞에 마주앉은 이씨는 죽은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 둘 꺼내며 동생들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 들었다. 이씨는 “나이도 젊은 내 동생들이 모두 죽었다는 게 허망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2차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에는 인민군 포로 출신 세 명이 포함됐다.

거제수용소에 수용됐던 인민군 포로 김민주(81)씨가 부인 이만조(70)씨와 큰아들 김선호(55)씨를, 역시 거제수용소에 수용됐던 인민군 출신 현윤택(80)씨가 북의 아들과 딸을 만났다.

김민주씨는 신혼으로 돌아온 듯 곱디 고왔던 부인의 손을 어루만지며 젊었을 적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고향 모습을 되새겼다./금강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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