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 지원 ‘딜레마’ 이렇게 풀어라

국민들은 햇볕정책 하면 식량, 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경협을 떠올린다.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도주의 지원은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남북경협은 김정일에게 핵무기 자금을 대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인도주의 지원과 남북경협 문제는 햇볕정책 찬반론자들 사이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선 우선 인도주의 지원 문제를 보자.

현재 인도주의 지원 중 비료는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으나 식량은 차관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따라서 식량은 인도주의 지원 항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형식은 차관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안갚으면 회수할 방법도 없고 한국 정부도 회수할 의지도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인도주의적 무상 지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식량과 비료 모두 인도주의 지원 범주 속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다.

인도주의 지원 딜레마, 김정일로부터 기인

인도주의 지원의 쟁점은 분배의 투명성이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할 때 인도주의 지원은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배분되어야 ‘인도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원을 했는데 그 지원이 지원받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들어간다면 그것은 인도주의 정신에 위배된다.

이런 이유로 WFP 등을 비롯한 국제지원 기구는 분배의 투명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원조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는 지난 해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WFP가 전 세계적으로 식량지원 분배 투명성과 관련해 기준으로 삼고 있는 네 가지 조건을 북한 당국이 받아들이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네 가지 기준이란 ▲ 북한 당국이 식량을 지원받는 집단의 명단을 제출하고 있지 않다는 점 ▲ 사전에 방문 통보를 하지 않으면 식량 분배 현장을 확인할 수 없게 한다는 점 ▲ 북한의 203개 행정구역 모두에 대한 접근을 불허하고 있다는 점 ▲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고용할 수 없도록 한 점 등이다.

WFP 등 국제 인도주의 기구는 식량 분배 모니터링 문제로 북한 당국과 잦은 갈등을 빚었다. 이에 몇몇 단체들은 북한이 분배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진 철수하기도 하고 어떤 단체들은 북한 당국이 쫓아내기도 했다. 미국은 분배 투명성이 일정 기준 이상 보장되지 않으면 인도주의 지원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북한에는 지원을 많이 하고 싶어도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은 인도주의 지원의 분배 투명성 기준에 못미치는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국제 기준에 맞는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원칙에 따라 대북 지원을 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일종의 원칙론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정권은 분배 투명성을 현실적으로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분배 투명성 요구를 관철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식량, 비료가 전용되더라도 북한 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결국은 북한 인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또 원칙론만 주장하는 것은 김정일이 존재하는 한 북한 주민들을 지원하지 말자는 입장과 동일하기 때문에 북한적 상황에서 원칙론은 반인도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분배 투명성 강조, 민간단체 지원은 자율로

그런데 이런 인도주의 지원의 딜레마는 김정일 정권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정상적인 정부는 어떻게든 자기 인민들을 굶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능력이 부족해 자기 국민들의 식량문제 해결을 못하면 외부 지원식량의 분배 투명성 보장에 최대한 협조하려 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분배 투명성을 보장했다가는 외부인들의 북한주민 접촉 빈도가 높아지고 이는 곧 자기 정권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민들이 굶어 죽더라도 외부인과 주민들과의 접촉은 최대한 막겠다는 것이다.

그럼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 직접 지원은 국제적인 분배 투명성 기준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어차피 정부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규범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정부는 분배 투명성 준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식량, 비료, 특히 식량을 차관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빌려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지만 식량, 비료 등 지원은 차관 형태이더라도 회수 가능성과 남한 정부의 회수 의지가 모두 회의적이다. 따라서 차관 형태를 인도주의적 지원 형태로 바꾸고 국제적 분배 투명성 기준을 엄격히 준수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민간단체 지원은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 단체를 지원할 때는 지원 원칙을 정할 필요는 있다. 정부는 민간 단체 중 분배 투명성 실적이 높은 단체를 더 많이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단체는 지원 우선 순위를 뒤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민간 단체 간에도 분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셋째, 인도주의 지원의 정치,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지원되는 식량이나 비료가 상당수 전용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물 지원은 현금 지원과는 다른 정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은 김정일 호주머니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현물 지원은 특히 유통 과정에서 중간 간부들이 전용하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후반 대북 인도주의 지원 초기에는 북한 정부가 남한에서 지원해주는 식량 등을 직접 거두어 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경우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대신 식량 유통에 관련된 중간 간부들이 전용한 식량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

쌀을 예로 들면 북한 내 공식 쌀 가격은 1kg에 40원 정도인 반면 장마당 가격은 1,000원 안팎이다. 25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때문에 중간 간부 입장에서는 배급 식량을 전용하여 시장에 내다팔고 싶은 인센티브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식량을 전용하는 중간 간부들은 시장을 유지해야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해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동시에 지방의 중간 간부들은 부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의 수입원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전용되는 식량은 북한내 시장을 강화하고 김정일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북한내에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하여 아사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또 다시 오게 되면 정부는 여전히 분배 투명성의 원칙을 견지하되,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민간단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북한내 상황이 인도주의 위기 상황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이는 북한내 장마당 가격과 탈북자 증언을 종합하면 판단할 수 있다. 북한 장마당 가격은 식량의 수급을 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장마당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일이 발생하면 이는 공급 부족 상황이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에 탈북자들이나 중국을 오가는 북한 무역상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 내부 실상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면밀한 상황 판단에 기초하여 정부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정책은 신축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판 베를린 공수 작전’ 펼쳐야

최악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북한 정부가 중간 간부들에 의해 전용되어 결국 시장에 흘러가는 가능성도 막는 경우이다. 즉 중앙정부가 대북 지원식량을 직접 거두어 북한 주민에게 분배하지도 않고 외국 수출 등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로 인해 또 다시 북한에 수만 또는 수십만 이상이 아사의 위기에 처할 때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럴 경우에는 1948년 6월부터 462일간 지속되었던 서베를린 공수 작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서베를린 공수 작전은 소련이 자신의 점령지 안에 있던 서베를린의 육상 교통로를 봉쇄하면서 시작되었다. 1948년 러시아는 독일 통일 문제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가 통제하고 있던 서베를린 지역의 모든 육상 교통과 전력을 봉쇄하였다. 이에 미국, 영국, 프랑스는 서베를린 지역에 비행기로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공수 작전 462일 동안 비행기의 이륙 회수는 27만8천228회였고 지원한 생필품은 232만6천406톤이었다.

서베를린과 북한의 차이점은 서베를린은 연합군의 영토였기 때문에 비행기 착륙이 가능했으나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비행기로 생필품을 투하해야 한다. 또 북한의 경우는 그 비행기들을 격추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비행기로 생필품을 투하할 때 무력충돌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주민에게 비행기로 생필품을 투하하는 작전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될 때만 결행되어야 한다. 하나는 북한에 대량아사 위기가 실제 현존해야 한다. 대량아사 같은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 상황에서는 유엔도 무력 개입 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전투기들이 생필품 공중 투하 비행기를 엄호하면서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을 구원하는 작전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 정부가 이것도 막는다면 김정일 정권은 유엔의 이름으로 응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용 교재, 즉 책, 테이프, CD 등을 북한에 무상지원하는 걸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치적 내용은 북한에서 받지 않을 것이다. 대신 사회, 문화적 내용은 북한에서 받는다. 특히 외국어(영어, 중국어 등) 교재는 북한에서 받은 전례가 있다. 또 국제무역 등 시장 경제에 관한 책들도 북한에서 관심 있다. 건강에 관한 서적들도 북한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이 쓰다 남은 책, 테이프, CD 등을 모아서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북한의 변화는 주민들의 의식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정치의식 변화도 사회, 문화적 교양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효과가 크다. 때문에 합법적으로 북한에 보낼 수 있는 교육 자료들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북한에 건전한 변화를 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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