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대북지원

일본 후지TV는 지난 11일 오후 6시에 최근 북한 내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탈북자가 내부에 잠입해 촬영한 이 동영상은 5월말 경 함경남도 단천시에 발생한 예사롭지 않은 사건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 정부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장면도 나온다. 대한민국 지원 쌀이 인민군 호위 아래 단천역에 도착한 뒤 트럭에 실려 인민군 부대로 이동하고 군창고에 비축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단천역 부근 공개장소에 ‘선군정치 바람에 인민들이 굶어 죽는다! 군대들에게만 주지 말고 인민들부터 쌀을 달라!’는 벽보가 붙어있는 장면이 나온다.

단천 주민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면서까지 외치고 싶었던 절박한 구호가 바로 남한에서 지원한 쌀을 인민들에게도 나눠달라는 것이었다. 이 벽보를 본 한 주민은 “그래도 시원한 말”이라고 옆 사람에게 속삭인다. 대한민국 지원 쌀은 단천 주민들에게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특권이자, 목숨이며 간절함 그 자체다.

남한 사람들은 쌀을 달라는 말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처절한 목소리인지를 잘 모른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허약에서 영양실조로, 여기서 다시 아사(餓死)로 이어지는 수십일 간의 참상은 이루 말로 담기조차 어렵다. 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당시 북한에는 이른 아침거리의 사체를 치우는 ‘9.27 상무(常務)’가 존재했다.

이곳에 근무한 탈북자는 “굶어서 죽기 직전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콘크리트 바닥을 맨손으로 긁어 파요. 그냥 조용히 죽는 게 아니에요. 손톱이고 손이고 피로 범벅이 될 정도로 몸부림치지요.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어 있고, 남성의 주요 부분은 이미 몸속으로 기어들어가 보이질 않을 정도에요”라고 말한다.

대북지원 쌀이 북한 부패구조 만들어

한 탈북자가 이른바 ‘고난의 행군'(대아사) 시절 청진역을 지나는데 젊은 여자가 거리에 쓰려져 자신을 부르더란다. 그 여성은 이 사람에게 외진 곳으로 자신의 몸을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죽으면 몸에서 이가 전부 기어 나와 득실거리면 얼마나 창피해요. 사람들이 안보는 곳으로 숨겨주세요.”

처음에는 그 탈북자는 그런 말을 할 정신이면 일어나 살라며 욕지거리를 해주고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서 여자를 골목에 숨겨주고 왔다고 했다. 그는 “정말 그것 밖에는 해 줄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는 이영화 간사이대 교수는 “북한지원 물자의 50~70%가 군부대로 먼저 흘러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대부분 일치한다.

김정일은 남한의 지원물자를 “수령님에게 바친 것”이라며 군부대에 우선 돌려주는 ‘은혜’를 베풀고, 지원 쌀을 넘겨받은 군대 간부들은 다시 장마당에 내다판다. 그리고 이 돈으로 병사들에게 쌀의 절반 값으로 강냉이를 먹인다.

그리고 그 차액을 챙긴다. 결국 남한 지원 쌀은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빛내주고, 군 간부들의 돈벌이를 만들어 주면서 주민들에게 비싸게 되파는 부패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대북지원에 ‘인도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반북주의자인 것처럼 몰아 붙인다. 그러나 독재자 김정일 입장에서는 남한의 지원 쌀로 군대를 배불리 먹이는 조공(朝貢)에 불과하다.

정부가 당연히 요구해야 할 분배의 투명성을 북한이 거부한다고 못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쌀 지원을 대가로 2차 군 장성급 회담을 받아냈다고 자랑하던 통일부 사람들 아닌가. 10만t 당 몇 명씩 가서 배급소 하나 둘러보는 것이 투명성 확보인가?

단천역 부근에 나붙은 ‘인민들에게 쌀을 달라’는 구호는 김정일 아닌 남한 통일부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다. 당국자들은 북한 인민의 요구에 더 이상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남측의 인도적 대북지원 쌀은 북한 주민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이라도 이 원칙을 바로 세우지 않을 경우 우리의 인도적 지원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지원이었음을 훗날 북한인민들이 폭로할 것이다.

신주현 취재부장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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