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불빛 밝혀라’…납북자 송환 염원 촛불행사 열려



▲ 유엔이 정한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지난 10일, 황인철(49)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사진 가운데)와 탈북자 지원단체 TNKR(Teach for North Korean Refugees)이 ‘HUMAN RIGHT 영화제’ 및 ‘납북자 송환을 위한 촛불 염원’ 행사를 개최했다./사진=TNKR 제공

“어제(10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이었잖아요. 북한 당국에 의해 강제 납치된 아버지를 포함한 납북자의 고통, 또 그 분들을 만날 수 없는 가족의 슬픔. 이것이 모두 인권유린과 연관돼 있습니다. 그 동안 혼자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싸워왔는데, 함께 모인 분들의 도움 덕분에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의 납북자들이 송환될 때까지 이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유엔이 정한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10일. 황인철(49)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서울시 마포구 소재 TNKR(Teach for North Korean Refugees) 사무실에서 ‘HUMAN  RIGHT 영화제’ 및 ‘납북자 송환을 위한 촛불 염원’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북한 당국에 의한 강제 납치 실태를 조명하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유엔 헌장의 취지를 되새기기 위해 열렸다. 황 대표와 탈북자 지원단체 TNKR 회원 등 10여 명이 납북자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다.

황 대표는 “오늘(11일)은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의 납북자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지 47년째가 되는 날”이라면서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 분들의 삶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다시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UN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 실무그룹(WGEID)은 ‘강제실종 및 외국인 납치문제’에 관하여 ‘특히 악랄한 인권유린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북한 당국은 여전히 아버지와 탑승객들을 납치한 ‘범죄’ 행위를 부정하고 있다. 아버지를 돌려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황 대표는 “1969년 KAL납북사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유린한 행위이다. 따라서 당장은 내가 직면한 문제지만 나를 비롯한 전 세계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세계 모든 이들이 함께 긴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국제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전 세계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한 케이시 라티그 TNKR 공동대표는 “행사의 모토는 ‘인권의 불빛을 밝혀라(Shine the Light for Human Rights)’였다”면서 “이번 촛불처럼 황 대표님의 아버지를 포함한 1969년 KAL납북사건의 피해자들의 인권의 빛을 밝혀드리고 싶었다. 그 분들의 송환을 염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시 대표는 이어 “올해 황 대표님과 함께 ‘KAL납북사건’ 사건의 실태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했다”면서 “앞으로도 황 대표가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캠페인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9년 KAL납북사건황 대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힘이 난다”

북한은 1969년 12월 11일, 50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는 대한항공 YS-11기를 고정간첩(조창희, 당시 42세)을 통해 납치했다. 당시 39명은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지만, 서울 MBC에서 열린 편성계획회의 참석 차 비행기에 탑승했던 황 대표의 아버지 황원 씨를 포함한 11명은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

황 대표는 ‘2001년 3차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딸을 갓 낳았던 내가, 그맘때의 어린 나를 두고 북한으로 납치된 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니 그만한 고통이없을 것 같았다”면서 납북자 송환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돌아온 39명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공산주의 사상 교육 시간에 반박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북한 당국에 강력히 요구를 했고, (이 결과로) 2주 동안 어딘가로 끌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원 씨는 이후 1970년 1월 1일, ‘가고파’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재차 북한 당국에게 강력히 항의를 했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또 다시 끌려갔다. 돌아온 승객들(39명, 1970년 2월 14일 송환)은 이후, 이들이 판문점을 통해서 송환될 때까지 황 대표의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황 대표는 지난 16년간 아버지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관련 활동에 매진해 왔다. 2010년 5월에는 WGEID에 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해 ‘WGEID’는 북한에 사건조사와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2010년 이후 매년 12월 11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납북자 송환에 대한 ‘1인 시위’를 통해 우리 정부의 노력을 촉구해 오던 황 대표는 올해에는 숙명여대로 자리를 옮겨 ‘송환 촉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황 대표는 “오늘(11일)은 KAL납북 47주년 행사와 세계인들이 함께 모여 ‘KAL납치피해자 송환을 위한 협의회’ 단체 발족식을 갖는다”면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세계인들이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발판이 마련됐다. 획기적인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에는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납북자 송환을 위한 청원 운동과 국제세미나를 준비,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유엔에서도 강제 납치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 11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방한(訪韓) 당시 동행한 유엔의 한 인사가 KAL납북 문제를 2017년도에는 좀 더 주목하겠다고 밝힌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