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도큐먼트] 북한 주민이 노벨평화상 받는 ‘발칙한’ 상상

공포정치에도 체제 비판 의식 존재…北주민 표현의 자유 지켜야 항구적 평화 얻어

2018년 촬영된 북한 평양 노동신문사 건물. /사진=데일리NK

올해 노벨평화상이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온 두 언론인에게 수여됐다는 소식에 잠시 이런 상상을 해봤다. 북한 노동신문 기자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날이 오게 될까? 정치범수용소나 공개처형의 잔혹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노동신문 1면을 장식한 공로로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공허한 상상을 접었다. 세계 최악의 언론 탄압국으로 꼽히는 북한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지난 7월 북한 김정은을 ‘전 세계 언론자유 약탈자(predator)’ 37인에 포함하고 “언론이 당과 군부, 자신을 찬양하는 내용만 전달하도록 통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북한은 늘 최하위에 머물러 왔다. 북한의 1등 신문인 노동신문이 체제 선전을 전담하는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직속 기관이란 사실만으로도 북한의 언론 탄압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노동신문의 모든 기사는 기자들의 합평(合評)을 거친 후 당과 내각의 감시와 행정지도 아래 엄격한 3단계 검열을 받아야 한다. 사실 검증이나 취재 윤리 준수 등 언론의 정도(正道)를 지키기 위한 과정이 아닌, 기사의 내용이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합치하는지를 평가하는 작업인 셈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 정치부 기자였던 장해성 씨는 “오로지 수령의 교시와 언론방침에 따라야 할 뿐 기자나 편집국이 결정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북한 언론인이 정권을 직접 비판하거나 독자들의 비판 의식을 고취할 만한 기사를 쓴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헌법 제67조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 조항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어쩌면 노동신문 기자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언론에서의 정치적 표현만 금지돼 있을 뿐인가. 탈북민들은 일상에서도 당과 수령을 비판하다가 ‘말반동’으로 걸리면 모두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실제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데이터베이스에는 1950년대부터 2021년 10월 현재까지 당과 체제, 최고지도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가 1,310건 등록돼 있다. 여기에는 정치범수용소 구금 사례 495건, 실종 사례 212건, 공개처형 및 비공개처형 사례 147건이 포함돼 있다. 고된 노동에도 늘 배고파야만 하는 삶을 술김에 불평했다는 이유로, 대가 없이 체제 선전을 위한 각종 행사에 동원돼야 하는 현실에 투덜거렸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북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회 붕괴론’ ‘시민사회 봉기론’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북한에서 시위나 집회는커녕 현실에 대한 투덜거림을 담은 대자보 하나 발견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정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어려운 사회에서 당국에 반(反)하는 여론이 수렴되고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일각에선 저항하지 않는 북한 주민들을 보며 당국의 의식화 작업이 효과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반동’에 따른 처벌 사례가 계속해서 보고된다는 것은 가혹한 공포정치마저도 아래로부터의 저항 의식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민 저항을 주도했던 바츨라프 하벨은 “체제에 대한 복종을 강제하는 전체주의와 근본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의 삶 사이에는 ‘깊은 심연’과 같은 간극이 존재한다”고 했다. 체제에 순응하는 듯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장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가장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마음의 심연에 담아둔 이야기에 우리는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목숨을 걸고 탈북하지 않는 이상, 북한 정권에 의해 겪은 부당한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현실에 왜 분노하지 않는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뿐, 오랜 세월 울분에 찬 침묵이 북한 땅 곳곳에 어려 있다.

우리는 나쁜 정치를 비판하며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어보기도 했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변곡점을 맞이하기도 했다. 때로는 그 과정이 혼란과 충돌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오늘날 권력 없는 자들이 권력자를 비판해도 일상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지난날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먼저 경험해본 만큼,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마음속 심연에 가둬둔 생각을 자유롭게 꺼내 표현하며 일상의 평화를 누릴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두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드미트리 무라토프에게 “민주주의와 항구적인 평화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모두가 염원하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역시 자신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김정은만의 평화일 수는 없다. 훗날 북한 당국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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