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범죄자’ 김정은 아닌 北주민과 대화로 변화 촉진해야”

2005년 첫 발의 후 11년 만에 채택된 북한인권법이 4일 시행되면서, 법안의 주요 골자인 북한인권재단도 서울시 마포구에 터를 잡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증진을 위한 사업에 본격 나설 예정이다. 그동안 탈북민이 아닌 북한 내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 정부 차원의 정책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인권재단 활동방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일단 재단의 핵심 업무는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해오던 민간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모·심사를 거쳐 이뤄질 지원을 통해 민간 대북 활동이 탄력이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간 134억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기로 한 재단은 현재 이사진 구성과 막바지 조직 정비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단의 궁극적 목표가 ‘대북 단체 지원’이 아닌 ‘북한 주민 인권 증진’에 있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사업 및 정책이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여기서 북한인권법 채택 이후 ‘북한인권증진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서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 즉 ‘북한의 정보 자유화’ 방안이 누락된 게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김정은 체제가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를 고수하면서 선전선동을 통해 체제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정보화의 강한 바람으로 주민들이 북한 사회의 실체를 깨닫게 만들어야 인권 유린 범죄자 김정은과 간부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등이 북한 주민들까지 고려해 내놓은 ‘방송법 개정안’도 통과되지 못한 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 보장에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 것으로 보인다.

관계 실무자들은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가 ‘북한인권’이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되니 별도 명시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법안이 두루뭉술하게 서술돼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데일리NK에 “김정은이 결코 핵을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 정권과의 대화보다는 북한 주민과의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북한의 정보 자유화를 가져올 공세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대북방송 등 대북 정보 유입을 지원하겠다는 조항이 왜 빠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어 “북한인권법 발효는 곧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할 만한 내용이 없어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무한 책임을 선언하고 보다 자유롭게 북한에 정보를 유입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여 년간 민간 대북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대표도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충족한다는 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곧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면서 “북한인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결국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인권 의식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는 게 법안의 한계”라고 꼬집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도 “북한인권법에 북한의 정보 자유화를 보장하는 내용이 빠져 있는 만큼, 향후 국회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을 다양한 방법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의 정보 자유화를 위한 노력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북한을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도 2014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사상과 표현, 종교의 자유’를 북한의 6대 인권침해 사항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당시 마이클 커비 전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인권과 관련한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국은 2004년부터 시행 중인 북한인권법을 통해 대북방송과 북한의 정보 자유화 촉진 정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오고 있다. 법안 제103조는 미 연방정부가 대북 라디오방송에 대한 지원을 늘림으로써 북한에 정보가 방해 받지 않고 유포되도록 하고 있고, 법안 제104조는 북한에 라디오 등 방송 청취 수단을 공급해 북한 내 정보 자유화를 촉진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법안에 따라 미국에서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미국의 소리 방송(VOA) 등이 현재 북한에 하루 11시간 동안 방송을 보내고 있다. 내년부터는 5년 간 매년 880만 달러의 예산이 북한 정보자유화를 위한 정책에 투입되며, 미 하원도 ‘북한 정보유입 촉진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안의 미흡함이 지속 제기되자, 일각에서는 제2의 북한인권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데일리NK에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실현하는 ‘알권리 증진법’ 즉 제2의 북한인권법이 나와야 한다”면서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추가로 마련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북한인권을 위해 일하는 세력들이 뭉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방송’이라는 수단 외에도 북한 주민들과 인적으로나마 접촉할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정보 유입 통로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방송 등 단방향으로 이뤄지는 정보 유입이 자칫 북한 주민들에게 ‘공세적’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감안, 인적 교류나 인도적 지원을 조금씩 재개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전략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영호 강원대 초빙교수는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확보해주려면 그 권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면서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해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일깨워주면 그 연장선에서 점차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북한은 이미 북한인권법과 인권재단에 큰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북한인권 정책을 펴게 되면 주민들마저도 거부감을 보일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독재자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면,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각성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보다 ‘전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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