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기록보존소, 동독주민 인권보호에 기여”







▲베른하르트 젤리거 獨한스자이델 재단 한국 대표는 “서독 인권침해기록소(잘츠 기터)는 동독 정부의 체계적인 인권 침해를 제한하는 예방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김봉섭 기자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 한스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는 서독 정부의 대(對)동독 인권정책의 일환이었던 인권침해기록소(잘츠기터)가 동독 정부의 인권 침해에 실질적인 제한을 가하는 예방효과를 거뒀었다고 평가했다.


젤리거 대표는 14일 서울 한남동 재단 사무소에서 가진 ‘데일리NK’와 인터뷰에서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와 직접적인 교류협력을 해나가면서도 인권 문제를 희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특히 인권침해기록소에 관해서는 처벌의 효과는 적었을지라도 동독 정부의 체계적인 인권 침해에 실질적인 제약을 가하는 예방 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서독 분단 시기 국경을 넘는 탈(脫)동독자를 저격해 온 동독 군인들은 자신의 인권침해 행동이 어딘가에서 기록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행동에 제약을 느꼈다고 한다.


젤리거 대표는 아울러 “잘츠기터는 통일 이후 인권 피해자들의 보상과 명예회복을 도왔고, 동독의 시스템 자체가 체계적으로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알리는 역사적인 기록물로써의 역할도 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는 민주당 등의 반대 주요 논리 중 하나가 바로 ‘실효성’ 문제다. 즉 북한인권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인권개선 주체(북한)의 노력이 없는 한 정치적 공격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북한인권침해기록보존소’ 설립은 잘츠기터를 모델로 한 것으로 북한당국의 인권침해를 막는 압박 효과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젤리거 대표는 북한인권법을 둘러싼 한국 여야 정당의 의견 충돌에 대해서 “가장 좋은 것은 민주적으로 여야 양당이 찬성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입장을 확실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헬무트 콜 수상 당시 야당이었던 사회민주당도 잘츠기터는 냉전의 유물이라 주장하면서 반대했었지만 결국 (잘츠기터는) 매우 필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를 볼 때 야당의 반대가 있더라도 다수당의 의견으로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법안이)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반도 통일 조건에 대해서는 “한국은 독일 통일 당시의 서독보다 (통일을 지지해 줄) 동맹국이 적은 편”이라면서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고, 유엔과 협력해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해서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당시 동서독의 상황이 현재 남북한 상황과는 매우 달라 독일의 경우가 한반도에서 똑같이 재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독일 통일 사례는 (남한에)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전략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각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책을 제안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통일세 추진에 대해서는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로 상징성을 지닌다”면서 “북한에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고 있고 통일 이후에 북한 경제를 개발시킬 준비가 돼있다는 좋은 사인을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통일 20년 평가와 관련해서는 “독일 통일은 동·서독 국민들의 요구로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동독 지역의 기대수명의 증가 등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경제·정치 분야에서의 통합, 특히 사회통합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남한과 북한도 60년이라는 분단 역사만큼이나 사회통합이 쉽지 않을텐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교류가 중요하다”면서 “지금 북한 사람들이 한국 TV, DVD를 접하는 것이 (사회통합의) 중요한 시작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외에도 한스자이델 재단이 지난 4년 동안 유럽연합(EU)과 함께 무역연수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하위 관료뿐 아니라 고위 관료도 기술에 대한 욕구는 있으나 경직된 정치제제 때문에 (경제 협력을) 못할 때가 많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개혁개방의 분위기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중국도 그러한 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스 자이델 재단은 ‘유럽연합(EU)-북한 무역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4년간 북한에서 국제무역, 관세 등 경제 분야에 관한 교육활동을 지속해왔다. /김봉섭 기자


[베른하르트 젤리거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한스자이델 재단은 한국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가? 


한스자이델 재단은 법적으로는 NGO 단체고 독일 고유의 개념으로 보자면 독일 정당과 연관된 싱크탱크다. 바이에른 정부와 연결되어 있고 독일 경제협력부의 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 40개 국가에 사무소를 두고 경제협력 분야와 관련한 활동을 각 나라의 상황에 맞춰 지속해오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1987년 사무소가 설립됐다. 1991년도부터 1993년도까지는 한국의 농촌개발과 지방자치 지원을 했고 현재는 통일문제에 주력해 한국 사회에 독일 통일의 유용한 경험을 전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DMZ 변경지역에 지속가능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독일의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더불어 북한에 대해서도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교육훈련, 국제무역, 경제, 관세 등 취약한 경제 분야에 대해 교육훈련 활동을 하고 있다. 의료산업이나 의류도 지원하고 산림 유기농 환경 등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서 북한에 기술들을 전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 산림, 환경 등에 관한 책이나 데이터베이스 등을 제공한다. 북한의 경제 관료들이 앞으로 개혁개방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이러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있다.


-동독과 북한의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독일 통일 사례가 한반도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사실 동독과 북한 자체도 큰 차이가 있고 독일통일 당시의 국제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또한 다르다. 독일 통일이 한국에서 재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독일통일이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통일을 준비하는 전략의 필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전략이라는 것은 하나의 큰 (통일)마스터플랜이라기 보다는 각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으로 (동서독과 남북한 간) 비슷한 점이 있다면 동서독이 40년 간의 분단을 겪으면서 큰 격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남북한보다 분단기간이 짧고 현재 남북간의 격차보다 적은 수치지만 당시 독일인들이 느끼기에는 큰 격차임에 틀림없었다. 또한 동독에서 서독으로 국경이 풀리자마자 대량 이민이 발생했는데 북한도 역시 국경의 봉쇄가 풀리면 그러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하게 지켜봐야 할 것은 국제 정세인데,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은 유럽연합(EU)과 나토(NATO)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을 조금 더 쉽게 이룰 수 있었으나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서독보다는 주변에 동맹국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중국이 유엔과 협력하고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해나가야 하는 처지에 있다.


-독일통일이 벌써 20년이 흘렀다. 독일 통일에 관한 전반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독일인들은 통일 이후 전보다 행복해졌다. 비록 흡수 통일이라고는 하지만 동독 사람들이 서독 사람들보다 더욱 통일을 원했다. 결과적으로 통일로 동서독 모두가 행복해졌고 무엇보다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뤘다. 특히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기대수명의 증가하는 등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됐다. 이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붕괴 후 10년 뒤 기대수명이 10년 줄어든 것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드러나는 성과다. 독일 통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경제적인 면과 함께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간 경제, 정치 분야에서 통합이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회통합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서독이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이렇게 다를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과거 5000년 역사를 같이 살아오며 같은 성씨를 쓰고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60년 분단의 차이가 크므로 쉽게 통합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정보교류다. 동독사람들은 매일 저녁 서독 티비를 봤고 서독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지금 북한 사람들이 한국 TV나 DVD를 보는 것이 (사회통합의 )중요한 시작이라고 본다. 


-지난해 광복절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 이후 통일세 찬반논란이 뜨거웠다. 통일 비용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 경제적 측면에서 통일세는 의미는?


가장 중요한 통일 준비는 경제적으로 튼튼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통일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통일 준비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수 경제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통일세는 적절치 않다. 국가 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미리 통일세를 걷으면 통일세 펀드에 대한 이자와 국가 채무에 대한 이자를 동시에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국가 채무를 해결한 이후에 통일세를 걷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사실 정치적·사회적 상황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특히 정치적으로 봤을 때 통일세라는 기금을 만들어서 통일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통일세를 하는 것이 옳고, 북한에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고 있고 통일 이후에 북한 경제를 개발시킬 준비가 되어있다는 좋은 사인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서독 정부가 동독과 직접적인 교류 협력, 방송 수신 보장, 정치범 석방, 인권기록소(잘츠기터) 설치 운영 등의 인권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서 정치적 논란이 있었는가?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인데, 첫째로 당시 서독과 동독간 직접적인 교류 협력 정책은 통일을 예측했다거나 통일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서독은 동독의 정보를 통제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서독 사람들은 동독의 기관지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독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있어서 이러한 것들을 제재하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서독은 동독보다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자신했고 동독 정보 유통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나토(NATO)의 군사적 지원으로 (서독의) 군사안보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인권 문제에 있어 중요한 점은 서독정부가 동독정부와 교류·협력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 어떠한 것도 인권을 희생하거나 포기하며 추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서독 정부도 보수당 정부가 들어설 때는 인권을 좀 더 강조하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동독에서의 인권 침해 사실을 기록했던 중앙법무기록보존소에 관해서는 처벌의 효과는 적었으나 동독 정부의 인권 침해에 실질적인 제한을 가하는 예방의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인권 침해 가해자들이)법적으로는 동독 정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벌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독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기관의 관료들은 자신의 인권침해가 어딘가에 기록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느끼는 예방의 효과가 있었다. 실례로 탈(脫)동독자를 저격하는 군인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딘가에서 기록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와의 직접 교류와 인권이라는 두 트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의 상황은 이와 다르고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는 남북간 교류와 인권 개선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려고 했으나 (이것이)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서독 중앙법무기록보존소의 인권 침해 기록이 통일 이후 어떤 역할을 했는가?


잘츠기터의 역할은 첫째로 인권 침해 가해자들을 기소해 처벌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국경을 탈출하는 사람을 저격하는 사례 등 제한된 케이스만 기소가 가능했다. 둘째로 인권 피해자들의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역할을 했다. 통일 이후 동독 공산당의 자산을 압류했고 이 자산의 일부는 인권 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해 사용됐는데, 실제 그 과정에서 잘츠기터의 기록이 활용된 사례가 있다. 마지막으로 잘츠기터는 역사기록의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알다시피 독일은 나치와 동독 공산주의라는 역사적 아픔이 있는데, 이러한 역사를 기록·연구하지 않으면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역사학자들에게도 잊혀질 위험이 있다. 나치의 경우도 사람들이 아우토반 건설 등을 들며 좋은 일을 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데, 나치의 범죄에 대한 기록이 철저하게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을 때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동독에 관해서도 기본 임금을 받을 수 있고 기본 생활 수준이 유지됐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데, 동독의 시스템 자체가 체계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시스템이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이러한 역사 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한국 내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여야간 시각차가 큰데, 이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민주적으로 여야 양당이 찬성하는 북한인권법안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입장을 확실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 서독에서도 잘츠기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981년 이후 헬무트 콜 수상 당시 야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은 잘츠기터가 냉전의 유물이라 주장하면서 반대했었지만 결국 (잘츠기터는)매우 필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경험으로 볼 때, 야당의 반대가 있더라도 다수당의 의견으로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법안이)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본다.


-오랜기간 북한과 교류사업을 하면서 최근 북한, 특히 일반 북한 주민들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평가를 한다면?


우리가 북한과의 교류와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북한은 변화하고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교류를 하는 하는 것은 중요한 교두보라고 본다. 한마디로 거래를 통한 변화를 들 수 있는데,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4만7천여명의 북한 주민들도 과거보다는 달라진 점이 있다고 본다. 다만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서 북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 사업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4년동안 유럽연합(EU)과 함께 북한과의 무역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 북한은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 (전수받은)기술로 물건을 판매하려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실제 국제 무역은 기술적인 측면에만 한정되어서 이뤄지지 않는다. 바이어들은 (협력)나라의 공장을 방문해 보건, 노동, 환경, 인권 상황 등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지를 본다. 이러한 점 때문에 북한은 의류 분야 특히 섬유 분야에서 20년전에는 라오스보다 생산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국제적인 소통이 취약하기 때문에 (라오스 보다)경쟁력이 낮아졌다. (교류 협력을 하는)우리들은 다만 국제 무역기준이 이러하다고 (북한에)말해 줄 수밖에 없고 그들의 판단에 맞겨야 하는 문제인데, 북한 당국은 이것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제재를 가한다. 하위 관료 뿐 아니라 고위 관료도 기술에 대한 욕구는 있으나 경직된 정치제제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북한이 개혁 개방의 분위기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고, 중국도 물론 국익에 부합하는 요구가 있겠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본다.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남북한의 경우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쉽지 않은데,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현재 한국 정부는 합리적인 탈북자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본다. 태국 수용소에 있는 탈북자들을 하루빨리 한국으로 데려오고 이들이 한국에 올바르게 정착하도록 하나원 등을 통해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최근 영국대사관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영어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오피니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선거에서 탈북자 출신의 국회의원이 배출된다면 이 또한 상징적으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상대로 하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중국에 대해서는 외교적으로 한 트랙이 아니라 경제·외교 등 여러 트랙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서독의 경우 동독의 정치범을 돈을 주고 사오기도 했었고, 1년에 일정 인원은 합법적으로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민을 갈 수도 있었다. 이러한 법적인 방법이 제한되더라도 경제·외교나 여러 다른 외교적 방법을 통해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데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실망하거나 한국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스자이델 재단 또한 성통만사 등의 단체와 함께 남한 대학생들과 탈북자들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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