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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사람을 먹는다. 사람 살려라!”
비명소리가 난 곳에는 13살 정도의 두 소녀가 피투성이가 되어 뻗어 있엇다. 두 소녀는 정치범수용소 안에 있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 경비대에서 기르던 개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개가 사람을 잡아먹어도 문제 삼지 않는 곳. 오히려 개를 사납게 잘 키웠다며 경비대원에게 칭찬을 하는 곳이 바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이다.
지난 1995년『그들이 울고 있다』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 ‘완전통제구역’의 실상을 고발했던 수용소 경비대 출신 안명철 씨가 자신의 탈출기를 추가한 수기『완전통제구역』(刊 시대정신)을 펴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보통 깊은 산 속에 마을 형태를 하고 있는데 마을은 독신자구역과 가족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한 당국은 광활한 지역에 걸쳐 울타리를 치고, 정치범들이 그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삼엄한 경비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안씨가 경비대원으로 처음 정치범수용소에 배치되었을 때 ‘정치범은 인간이 아니다’고 교육받은 것처럼, 북한 당국은 정치범들을 악질적인 종파로 분류하고,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지도층은 경비대에게 ‘정치범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의무’와 ‘도망치지 못하게 경계선을 지켜 반항하거나 도주하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사살할 의무’ 밖에 없다고 교육시킨다고 안 씨는 말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안 씨도 수인들이 살기 위해 수용소에 적응하는 것처럼 그 말에 곧 익숙해졌다고 한다.
그가 다섯 장에 걸쳐 전하는 정치범들의 일상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정치범들의 옷은 모두 넝마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너덜너덜했고, 머리는 언제 빗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헝클어져 있었으며 몸은 너무 말라서 뼈에 가죽을 씌운 것 같았다고 한다.
정치범들이 밭일을 하는 모습은 너무도 처량해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라고 한다. 제대로 먹지 못해 호미자루에 겨우 몸을 의지해 버티고 서있는 모습, 햇볕에 그을리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온 몸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모습. 안 씨의 입에서는 “저게 사람이야 짐승이야?”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1987년 6월 중순 수용소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보위원들은 구경만 할 뿐이었고 정치범들을 시켜 불을 끄게 했다. 정치범들은 머리카락과 옷이 불에 타들어가도 보위원의 눈총이 무서워 불 속으로 뛰어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의 화제로 정치범 다섯명이 연기에 질식해 죽었고, 두명은 불에 타 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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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는 오물에 섞인 국수찌꺼기를 먹기 위해 목숨을 건 정치범들의 모습도 목격했다. 1994년 5월 경, 두 명의 여자 정치범이 악취가 나는 오물장에 흘러가는 국수찌꺼기를 발견하고 이를 건져먹으려 했다고 한다. 지나가던 보위원이 그녀들을 보고 ‘돼지 같은 년들!’이라며 발로 차 오물장에 빠뜨렸다. 다행히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남자 정치범들이 그녀들을 살려냈다.
또 구류장 방탄벽에서 햇볕을 쪼이던 정치범들은 모두 삭발해서 남녀를 구분하기 어려웠고, 굶주림과 심한 매질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안 씨는 정치범들 중에 심지어 제대로 걷지 못해 네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피와 고름에 절어 고약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굶주림에 지친 수인들은 감시망을 피해 풀을 몰래 뜯어 먹었고, 이마저도 몇 번 씹지 않고 꿀꺽 넘기기 일쑤였다. 안 씨의 눈에 비친 정치범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의 모습이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정치범수용소에는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구류장’이 존재했다. 수인들이 식량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무서워하는 형벌이다. 보위원에게 대들거나 식량을 훔치거나 욕을 하는 등 규율을 어긴 수인에게 3개월 정도의 ‘구류장 행’이 결정된다.
매질은 기본이고, 하루 종일 0.5평의 좁은 곳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어야 한다. 수면시간 4시간과 식사시간을 빼고, 3개월 동안 같은 자세로 있다 보면 다리가 썩어서 폐인이 되고 만다고 한다. 구류장에 갔다 온 수인은 5~6개월 안에 사망할 정도로 가혹한 형벌이다.
안 씨는 아버지가 절도범으로 몰려 자살을 택한 뒤로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총을 들고 지키는 정치범들도 결국은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남한으로 가 정치범들의 실상을 폭로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나 안 씨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어도 암흑의 땅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기억은 오히려 해가 갈수록 더 생생히 떠오르며 매일 밤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안 씨는 지금도 수용소에서 죽어갈 수많은 정치범들이 떠올라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고 한다.
북한에 사는 사람은 물론, 그 곳을 탈출해 새로운 땅에 안착한 사람에게도 참혹했던 기억은 지울수 없는 낙인처럼 새겨져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아무리 외쳐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왔을 때의 충격도 금새 사그라들고 말았다.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완전통제구역’의 존재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현재진행형이다. 10여년 만에 재출간된 이 책을 통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버금간다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가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으로 떠오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