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괴이한 남한 좌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얼마 전에 나는 한 러시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이 기자는 북한의 외교 입장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몇 편의 글을 쓰면서 “러시아 정부도 김정일 위원장의 정권를 안정시키고 영속시켜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래 전부터 가까운 관계여서 나는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영속’은 북한의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체제 때문에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웃음을 지으면서 “그렇다. 그러나 나와 그 불쌍한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전 세계에서 매일 학살되는 사람들이 얼마 많은지 알고 있잖아? 북한 사람들을 많이 알면 동정하게 되는데,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아. 내 걱정은 우리 러시아의 이익, 또 그 이익에 알맞는 합리주의적인 외교 전략이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 사람의 입장은 냉소적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러한 의견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의 미래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은 거의 다 그렇다.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여러 세력은 서로 모순되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 이 공통점은 북한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운명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세력을 봐도 그렇다. 지금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변수는 중국이다. 사실상 북한 붕괴를 가로막고 한반도의 분단을 영속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나라는 중국뿐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눈에 띠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배려나 인권보호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물론 냉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권보호를 주장하는 미국이나 서유럽 여러 국가는 인권보호의 원칙이 이들 국가의 이익과 모순된다면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봤다. 그래도 인권에 대한 우려나 인도주의적인 배려가 그들 나라의 정책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냉전 시기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남한의 군사독재를 지지했지만 미국은 김대중을 암살하지 않도록 했다.

중국은 북한주민 관심 없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최고 목적은 ‘분단 유지’이다. 북한 서민들의 고생과 죽음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면 중국은 이것을 결코 문제로 보지 않는다.

중국의 대북지원이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원조를 제공하는 방법을 분석하면 그 목적이 서민들을 구원하는 것이라기보다 북한의 ‘체제 유지’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은 원조의 분배에서 투명성을 요구하지 않고 지원 식량을 서민들에게 나눠주도록 북한정권에 압력을 가하지도 않는다.

중국은 1970-80년대에 지정학적인 이유로 세계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독재로 꼽힐 수 있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까지 지지한 적이 있다. 이를 보면 북한에 대한 지지를 이해하기 쉽다. 3년 동안 전체 인구의 20%를 학살한 폴 포트 집단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인정이 많은(?) 지도자들로 볼 수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 일정 시기에 외교정책에서 인도주의나 인권보호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요즘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국가이익을 절대화하는 편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정책을 당연시하면서 인권보호 주장을 ‘미국의 선전’으로만 본다.

러시아 외교관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러시아 언론에서조차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동정심이나 관심이 거의 없다. 민주 국가인 러시아의 학자들이나 기자들은 권위주의 중국과 달리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북한을 지정학적인 체스판의 눈으로 보는 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국제관계 게임 때문에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고생하거나 사망하는 것을 ‘진짜 문제’로 삼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이다.

북한주민은 왜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남한 사회가 북한을 보는 눈이다.

냉소적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로서는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인 북한 주민들의 고생과 재앙을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든 싫든 국제관계가 냉소적인 게임인데, 자국의 외교정책을 인간적 동정심에 의해 결정되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남한의 경우도 꼭 같은 무관심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은 비합법적 기관이며 북한 사람들은 모두 무조건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는다. 남한의 일반인들에게 물어보면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국가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인식을 보면 남한 정부나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주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동포로 보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는 두만강에서 제주도까지 통치하는 합법적인 정권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주장을 허구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 서울 정부는 남한의 국토만을 통치하고 남한 주민들의 이익을 대표한다. 또 현실적인 사정을 보면 북한 정권의 영속성은 남한 주민들의 단기적인 이익을 대표하고 있다. 북한체제 붕괴는 수많은 난민과 사화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붕괴 후 북한경제 복구가 너무 어렵고 비싼 과제이다. 또 결정적인 위기에 직면한 북한 정권이 전쟁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위협이 없지 않다.

수십년에 걸친 고생과 노동의 결과 드디어 선진국의 생활 수준을 이룩한 남한 주민들이 자신의 행복한 생활을 지속하려는 행동은 자연스럽다. 또 민주주의에 따라 선거된 남한 정부가 남한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남한 주민들의 단기적인 이익이 북한 주민들의 이익, 또 한민족의 이익과 객관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대북정책의 최고 목적이 북한의 개혁과 경제발전을 격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북 지원정책을 보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촉진하는 것이라기보다 체제유지를 도와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아무런 조건과 투명성 없이 받는 식량을 정권 강화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남한에서 온 식량과 소비품들을 ‘가치 있는 사람들’에게 배분해서 그들의 충성과 지지를 받아내는 효과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개혁과 경제발전은 더 어려워지고 자꾸 연기되는 것이다.

요즘 남한에서 북한에 대한 진실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믿을만한 진실을 소개하는 언론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주류 매체는 북한을 비판하는 것을 피하는 편이다. 물론 그 이유는 북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대북 포용정책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남한 정부와 엘리트들은 남한 주민들에게 북한의 진실을 보여주면 유권자들이 북한 주민의 인권보호와 경제개혁을 촉진하는 대북정책을 실시하라고 요구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남한 좌파는 정부보다 더 열심히 북한 체제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세계적으로 좌파가 스탈린주의를 비롯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를 자신의 기본 사상으로 여긴 기간은 1960년대까지다. 스탈린의 살인 정책이나 모택동의 문화혁명 테러에 대한 흠모의 유산이 극히 일부 남아 있지만, 세계적인 범위에서 좌파 세력은 압도적으로 스탈린주의의 착각을 잘 극복해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1980년대의 좌파가 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아주 심해서 이러한 유산이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15년 전에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제작한 거짓말을 믿던 사람들이 지금은 의식을 좀 바꿨지만 그들은 북한의 실제가 평양의 선전과 어느 정도로 거리가 먼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 좌파는 스스로를 ‘서민들의 보호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북한의 서민들에 대해서는 전혀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남한에서 월급을 더 많이 달라는 노동조합을 거의 무조건 지지하는 반면에,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값싼 노동력’이 많은 지역으로 찬양하고 있다.

‘인권 보호’를 자신의 슬로건으로 만든 남한 좌파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을 ‘민주투사’로 묘사하는 사람들은 북한에 유례가 없는 독재가 있다는 사실은 보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인권 문제가 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좌파들이 있지만 그들은 북한에서 정치인권보다 경제사정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에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그들은 경제를 빠른 속도로 발전시킨 남한 독재에 꼭같은 논리를 적용하자는 역사학자들을 ‘반동 보수세력’으로 여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남한 좌파가 북한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남한 좌파의 통찰력이 넓지 않고 북한문제를 남한의 국내정치로 제한하여 보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남한 우파의 영향력을 파괴하고 나라의 정치 구조를 자기 뜻대로 바꾸는 것이다. 그들은 북한 서민들과 아무 관계도 없고 그들에게 ‘북한문제’는 하나의 추상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무관심’이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남한 좌파는 유난히 북한의 서민들을 무시하고 부자 독재자를 자신의 동맹자로 보고 있다. 유감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좌파들, 나중에 진실 밝혀지면 어쩌려나?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체제의 붕괴는 시간 문제이다. 나중에 북한 땅에 해방이 오면 북한 정권이 저지른 범죄는 노출될 것이다. 이것은 남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죽음의 공장’ 정치범 수용소, 일상화된 고문, 한국 역사에서 유례 없는 테러 등등의 북한정권의 정책에 대해 부정하기 어려운 증거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데 북한정권의 범죄들이 노출된다면 그런 살인 집단을 찬양했던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그들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까? 자기의 지난 잘못을 참회하면서 희생자들의 용서를 빌까? 물론 그렇게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인 필자의 역사적인 경험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할 것이다. 또 중국이나 러시아 사람 같은 외국인들은 자신의 친북입장을 정당화하는 방법 또 하나가 있다. 그들은 “우리는 진짜 애국자로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북한 사람들의 생활보다 더 귀중히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할 것이다. 또 남한의 자칭 진보파들은 “우리는 민족의 화해를 최우선으로 봐서 그렇게 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위선적인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자신의 잘못된 짓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이런 사람들은 북한체제가 붕괴되고 진실이 밝혀져도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계속 활동할 것 같다. 자칭 진보파의 우상인 미국의 촘스키 교수는 1970년대에 폴 포트 정권을 찬양하면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캄보디아 혁명가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칭 ‘진보파’는 지금도 촘스키를 그대로 숭배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찬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나,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나중에 김부자의 범죄가 노출된다 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요즘 ‘북한’이라고 하면 북한의 2천3백만명의 사람들을 통치하는 ‘특권층’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북한은 수만명의 고급간부들과 김정일 측근들이 아니다. 북한이란 곧 북한주민들이다. 지금 세계가 그들을 배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정학적 이유’라는 수식어를 쓰거나 자국의 이익에 빠진 사람들은 북한 서민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듯이 살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무관심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우선 북한 주민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 주민을 대표하는 세력은 바로 북한주민들의 단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이러한 단체는 남한 땅에서만 만들 수 있는데, 지금은 탈북자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들 단체는 북한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자각을 높여주고 북한사회의 진실을 알릴 언론인이나 정치인을 교육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의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외부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 주민이 아닌 우리가 할일은 그들이 스스로를 돕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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