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교한 ‘국가인권委’를 어떻게 할까?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3월 14일 안경환위원장의 이름으로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하루 전날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보고’와 관련된 짧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국가인권위는 2006년 12월 11일 ‘북한인권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을 표명한 이래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습니다. 국가인권위는 2007년 위원회 10대 중점추진과제로 ‘북한인권’을 설정했고, 2008년엔 6대 중점사업 과제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활동 강화’를 포함시켰습니다.”

북한인권에 관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선적 행태’를 모르는 일반인이 이 보도자료를 보았다면, 위원회가 꾸준히, 특히 서울법대 교수 출신인 안경환위원장의 취임 이후 북한인권에 대하여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용적으로는 정반대다.

우선 안위원장이 자랑스럽게 언급한 2006년 12월 11일의 ‘북한인권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위원회는 북한인권과 관련하여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의 법적 근거 및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엄연한 현실로 인해, 헌법 제3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국가인권위원회법」제4조 및 제30조의 해석상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북한지역에서의 인권침해행위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헌법3조는 북한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에 포함된다는 영토조항이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조와 제30조는 무엇인가? 제4조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적용범위로서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는 것이고, 제30조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업무수행(국회의 입법 및 법원·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제외한다)과 관련하여 「헌법」 제10조 내지 제22조에 보장된 인권을 침해당하거나 차별행위를 당한 경우
2. 법인, 단체 또는 사인(私人)에 의하여 차별행위를 당한 경우

안경환 현 국가위원장의 취임 이후 발표된 전원위원회의 이 ‘결정’에 대하여 황우여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2006년 12월 12일 “인권위는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영역 내 외국인을 모두 포괄적 대상으로 삼고 있고, 북한 주민은 입국 시 귀화절차가 필요 없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를 논할 수 없다는 논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국회가 1억4천8백만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배정하여 북한인권을 조사하라고 배정한 바 있는데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였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필자는 법조문 해석을 갖고 국가인권위회와 다투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에 규정된 바에 따라 북한지역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의무도 조사권리도 없다는 해석을 굳이 비판하지도 않겠다.

필자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2008년엔 6대 중점사업 과제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활동 강화’를 포함시켰다”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2008년 2월 18일 국가인권위원 김인재 인권정책본부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 개선정책”을 발표하면서 “인권침해와 관련, 북한에 권고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대목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필자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도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한 북한인권을 개선하고자 하는 국가기관의 노력이 어떻게 국보법 위반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필자가 재구성한 이들의 논리가 있다:

북한의 인권유린을 조사하고 그 시정을 북한에 권고할 경우, 북한정권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 2항에서 규정된 “법인이나 단체 그리고 사인”이 아니므로, 결국 제30조 1항에 근거한 행위가 되므로 북한을 합법적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고, 이것은 국가보안법이 금지하고 있는 이적행위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 및 위원이라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인권문제라면 펄펄뛰는 김정일정권에게 “너희 인권문제 많아! 빨리 고쳐!”라고 말하는 것이 김정일정권을 고무·찬양하는 이적행위라는 ‘소피스트적’ 주장에 대해서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다만 그 이유 중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문제에 개입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은 북한인권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싶었지만 국가보안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면, 다른 방법을 취했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조 혹은 제30조를 개정하는 것이다(외국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권의 보편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법개정을 요구했다는 소리는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설사 김대중-노무현 친북좌파 정권하에서 법개정에 실패하였다 해도 그러한 요구 자체만으로도 북한인권개선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보수정권 하에서 폐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국가보안법을 끌어당겨 거꾸로 책임소재를 국가보안법 지지자들에게 돌리는 간교한 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수 없는, 위선적이고 무책임하며 자기기만적 행동이다.

왜 그러한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주로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유린을 조사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주임무다. 그리고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유린의 상당부분은 관료주의와 형식적 법해석 혹은 법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단순 관료가 아니라 인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채용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내세우는 북한인권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변명하는 얄팍한 논리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전형적인 형식적 법해석, 전형적인 법의 사각지대의 악용에 해당한다. 즉 국가인권위원회 자체가 북한인권개선에 방해가 되는, 그리고 북한의 끔찍한 인권상황에 비추어 보아 국가인권위원회의 직무유기는 사실상 인권유린 방조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을 규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남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세계여론을 무마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노력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물론 “평화공존”의 이름으로 말이다. 즉 “어떤 사람이 평화공존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라는 잔꾀를 부리는 것이다. 드러내놓고 김정일정권을 옹호하는 자들보다 더 간교하게 논리와 이성을 악용하는 행위다.

현 국가인권위원들 자격 없어…지금이 자진 사퇴할 때

언어란 실은 그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 북한인권개선에 관한한 어떠한 진정성도 이들의 말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즉 북한인권에 관한 한 국가인권위원회는 활구(活句)가 아니라 사구(死句)만을 남발하는, “좋은 고기를 고름덩어리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고질(痼疾)이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기관이며, 바로 이 국가기관도 인권유린을 방조 내지는 자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은 마치 심장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혈액을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그 법이 적용되어야 할 첫 번째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인권개선”을 입에 달고 다니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이 현행법 하에서도 북한인권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그것은 물러나는 것이다. 스스로 법개정을 통해서라도 북한인권개선에 매진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지능이 나쁘던지, 아니면 ‘인권’이라는 이름에 합당할만큼 공평무사한 사람이 아니다.

만일 의사가 자기소임이 아니라고 마구 쓰러져가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으며 치료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면, 그런 의사는 면허를 박탈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의사라기보다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이 바로 이런 종류의 정신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다.

그들 스스로 그 어떤 ‘확신’에 의해 북한인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고 또 하더라도 마지못해 하며,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척 하더라도 실은 “변하지 않기 위해서 변하는 것”이라면, 물러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왜냐하면 친북좌파정권의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이 계속 남아있는 한, 앞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과 북한인권단체의 높은 관심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점점 더 높은 강도의 위선 혹은 기회주의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들을 위해서도 북한인민을 위해서도 불행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새 정부의 “코드”에 맞추어 행동해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명박정부가 대북정책의 방향과 북한인권 개선정책의 진정성이 어떠한지 아직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준거틀은 헌법과 양심, 유엔인권선언 등 보편적 상식에 의거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필요하면 개정해야하고 그것을 가장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안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들은 사이비 작은 논리를 따르다가 상식의 큰 줄기를 놓쳤다. 이들은 더 이상 인권이라는 말에 합당한 사람들이 아니다. 김정일정권이라는 봉건세습전체주의,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인권유린을 눈앞에 두고 그 개입여부에 토를 달고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정상국가라면 어떻게 인권보호의 중책을 맞길 수 있겠는가?

부기: 한 가지 오해를 막기 위해 추가할 점이 있다. 필자의 이 주장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부 산하 기관장들에 대한 사퇴압력과는 전혀 무관하다. 필자는 노무현정부의 몰지각한 기관장 싹쓸이 임명도 비판하고 이명박정부의 지금 행태에 대하여도 절차적 정의(正義)라는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 자체가 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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