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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입국 탈북자가 7천명을 웃돌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사회 부적응문제는 이미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재북(在北) 아내와의 법적 이혼 등 가사관련 문제다. 탈북자는 현행 헌법 제3조(영토조항)와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주민등록증도 받지만, 가사문제는 아직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에 거주하는 한 탈북자의 경우, 이들의 현실과 대한민국 법의 차이를 알아보자.
인천시 만수동에 사는 탈북자 김영수(가명, 38세)씨는 근 3년 동안 북한에 있는 아내와 이혼하려고 뛰어다녔지만 헛걸음만 했다.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에게 대뜸 “탈북자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반문한다. 다음은 김씨와의 대담 요약.
– 아내의 생사는 확인됐나?
확인했다. 아내는 북한에 살고 있다. 나는 2000년 당장 굶어죽을 것 같아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나왔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중국 공안을 피해야 하고, 탈북자라고 품삯도 안 줬고, 그나마 가진 돈을 몽땅 사기 당했다. 이 때문에 3년 동안 아내와 연락이 끊겼다.
2003년 8월 고생끝에 한국에 나왔고, 북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됐다. 데려오려고 정착금을 털어 가족에게 보냈다.
-왜 아내를 데려오지 못했나?
(한숨 지으며) 나중에 동생이 알려주었다.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다고… 내가 중국으로 간 뒤 소식이 없으니 죽은 줄 알고… 어려운 상황에서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니 다른 데 시집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무슨 낯으로 (한국에)오겠나? 아이들은 우리 어머니에게 맡겼다고 한다.
– 남한에서 새로 시작하면 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탈북자가 북에 있는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남한식으로 하면 아내와 ‘협의이혼’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아내를 데려올 수 없다. 그래서 ‘재판상이혼’ 절차를 밟으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다.
– 해당한 법조항은 있나?
3년 동안 안 가본데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국회법사위에 발 닳도록 다녔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에 전화를 걸어보니, ‘이혼 법은 논의 중’이라고 되풀이 한다.
법원은 탈북자 이혼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헷갈리고 있다. 국회법사위에서는 ‘재외국민이혼법’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한다.
– ‘재외국민이혼법’이면 중국이나, 베트남 사람들 처럼?
탈북자가 외국인인가? 한국에 왔으니, 우리도 대한민국국민이다. 탈북자 범죄 사건은 국내법에 적용시키고, 이혼법은 외국인법에 적용시키나? 탈북자 이혼은 민법 840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민법 840조 제5항에는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제6항은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때’의 경우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 변호사와 상담해보았나?
소송을 낸 수백명 중에 한 사람만 변호사를 선임해 이혼했다는 말을 들었다. 소문을 듣고 변호사와 상담했더니 선임비가 500만원이라고 하더라.
– 이혼하지 못한 탈북자들은 여태 혼자 사나?
같이 탈북한 여성과 동거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 호적에 올릴 수 없는것이다. 아이는 날 때부터 고아가 된다. 어머니 성을 따라 이름을 짓기는 하나, 이마저 편법이라고 법원은 말한다.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폐지’가 적용 되지만, 지금은 불법이라고 한다.
탈북자 부적응, 사회 부정반응 불러올 수 있어
또 이로부터 유발되는 부정적인 현상도 노출되고 있다. 근 3년간 막노동에 전전해온 김씨는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으니 썰렁하다. 김치에 밥 한 술 먹고, 술을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털어놓는다.
탈북자 부적응 문제는 지난 2004년 6월 ‘김정일 장군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며 1인 피켓시위를 벌린 유태준(37세)씨의 ‘이상한 행동’이 언론에 공개되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상한 행동’의 주인공인 유태준씨도 북에 있는 아내를 데리러 갔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되어 20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국내입국 탈북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직장문제, 심리적 불안문제와 더불어 가정적 안정을 찾지 못한 탈북자들은 흡연과 알코올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있다.
자유를 찾아 나온 것은 그들의 소신에 따른 것이지만, 곧 입국만이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자본주의 냉혹한 현실, 가정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착에 실패할 경우,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정착성공의 대부분을 가정적 안정에서 찾고 있다. 현실에 부합되는 탈북자 지원법안 마련이 시급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