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 정확히 알고 발언해주세요

지난 17일 정동영-김정일 회동 때 김정일은 정장관에게 “한반도비핵화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그것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했다.

이러한 ‘유훈’ 발언은 남한이나 국제사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를 향한 메시지”라는 독특한 해석이 나왔다. 북한문제 전문가나 학자가 소수의견 정도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 이해찬 국무총리가 사석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이 발언은 이총리의 비서실장을 통해 19일 언론에 보도됐다.

[유훈발언 = 북한내부용] → 김정일을 무시한 해석

이총리는 “김 주석의 유훈인 비핵화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군부나 북한 국민에게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로 언급하였다 한다. 총리 비서실장의 전언이어서 어디까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효(孝)’를 중시하는 동양사상으로 해석하면 김 위원장이 아들로서 아버지 김 주석의 유훈을 따르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이총리의 해석대로라면 김정일은 핵개발의 의지가 없는 ‘효자’인데 군부와 국내의 일부 세력이 핵개발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이며, ‘유훈’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불식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사석에서 한 발언이었고, 김정일에게 어느 정도 면죄부를 줘 자극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이건 좀 지나치다. 김정일을 무시한 발언이기도 하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핵개발을 최고지도자가 일부 강경파의 주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단행할 수 있겠나? 김정일이 그렇게 유약한 지도자였던가?

북한의 핵개발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김일성이 건재하던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김일성이 핵개발을 지시하였고, 김정일이 그것을 성과로써 계속 보고해왔다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비롯한 고위층 탈북자들이 줄곧 증언해왔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방북시 김일성이 “핵무기를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한 것은 위장된 거짓말에 불과했다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분석한다. 그런데 이총리는 김일성이 ‘한반도 비핵화’를 유훈으로 남겼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일까?

설령 김일성 생존시에 정말로 핵을 만들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하더라도, 1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핵개발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한 것은 김정일의 강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성 낮다’와 ‘돼서는 안 된다’는 엄청난 차이

‘개인 이해찬씨’가 북한과 김정일에 대해 오판하고 있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공직에 있기 때문에 문제는 심각하다. 이총리는 지난 8일 국회답변에서 “아직 미국,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도 북한의 핵보유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현 상태를 한반도 위기상황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총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핵미사일이 머리 위에 떨어질 정도가 되어서야 ‘위기’라고 말할 것인가. 국민들이 불필요한 불안감에 떨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현실을 분명히 전해주지 않고 지나친 낙관론으로 일관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무책임한 태도이다.

이 자리에서 이총리는 “북한정권이 붕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4월 폴란드, 독일 방문시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그러나 ‘붕괴 가능성이 낮으며, 그렇게 낮은 가능성을 조장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붕괴돼서는 안되며 붕괴를 희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총리는 북한의 반(反)독재 세력이 쿠데타나 봉기를 단행하더라도 ‘북한정권이 붕괴되어서는 안되고 그것을 희망하지 않으니’ 김정일 정권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란 말인가.

이총리는 국내 정치에는 9단, 10단일지 모르지만 북한문제는 아직 제대로 입문을 못해본 수준인 것 같다. 모르면 배워야 하겠지만 배울 시간이 없다면 어설프게 발언해서는 곤란하다. 하물며 입이 천만근처럼 무거워야 할 총리가 말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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