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씨에 대한 ‘거품’ 거둬내야 한다

6일부터 이종석(李鍾奭) 통일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물론 인준동의안 표결 같은 것은 없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청문회이다. 그나마 장관의 면면은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종석씨에게 늘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북한전문가’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문가라고 하면 특정분야에 어느 정도의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지닌 사람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이종석씨를 ‘북한전문가’라고 칭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과연 이종석씨는 ‘북한전문가’인가?

박사 10년만에 NSC 사무차장 되는 ‘승천’

이종석씨는 58년 개띠, 올해 마흔여덟이다.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종석씨가 본격적으로 북한을 연구하기 시작한 때는 1987년부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정치외교학의 한 분야로서 북한을 연구했다.

석사학위 논문은 ‘북한 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 제목만 보아도 어떤 내용인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석사를 마친 후 시간강사로 여러 대학에서 개론 수준의 강의를 했다. 박사학위를 딴 해는 1993년, 논문 제목은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였다.

박사학위 취득을 ‘전문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친다면, 이종석씨가 ‘북한전문가’라는 학위로서의 명함을 갖게 된 것은 이제 갓 10년 남짓이다.

박사가 된 직후(1994년)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1998년 동 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현실정치와 결합을 시작했다.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불과 두어달 앞두고 노무현 캠프에 들어가 2002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 ∙ 통일 ∙ 안보분과 위원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연구성과는 주로 북한정권 지도부의 조직구조와 운영원리에 관한 것이며, 저서는 공저를 포함해 예닐곱 권 정도이다.

2003년에는 대한민국의 통일 ∙ 외교 ∙ 안보를 통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사무차장이라는 엄청난 중책을 맡았다. 학위취득 10년만에 대단한 고속성장이다.

‘노동당 조직표’가 전문인 북한전문가들

이야기를 잠깐 돌려보자. 북한과 관련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신문에 “북한전문가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그 ‘누구’의 단골손님인 모 대학 교수와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북한의 통행증이 화제로 올랐는데, 통행증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북한의 통행증은 일반 도시와 평양, 국경연선 도시의 것이 각각 다르다. 평양에 출입할 수 있는 통행증에는 붉은 사선, 국경연선 지역은 푸른색 사선이 그어져 있다.

물론 아무리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도 주민 실생활의 이모저모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래도 탈북자 몇 명만 만나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인데 이런 것을 모르다니…. 그래서 무례하게도 ‘시험 삼아’ 이것저것 떠보았더니 정말 모르는 게 많았다. 나중에 조선노동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당 조직구성, 주요 당직자 이름 등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종종 그 교수님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게 되는데, 최근에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씁쓸하기만 했다. 믿거나 말거나, 특별한 근거도 없는 낙관론이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문제가 그렇다. 북한의 책임있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본다든지, 현장에 가서 확인해볼 수도 없기 때문에 ‘믿거나 말거나’식 분석이나 견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마치 점쟁이가 점을 치듯, 자기 맘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박사나 교수라는 권위가 실렸기에 그렇지, 학부생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실제 모습은 거의 모르면서 북한 정권의 선전자료나 공개된 문건 같은 것만 달달 외워둔 ‘노동당 조직표 교수님’들이 많다. 한번쯤 읽었거나 외우고나 있는 분들은 그나마 낫다. 가끔 토론회에서, 초보적인 사실조차 까막눈인 분들을 만날 때면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이종석씨에 대한 거품 거둬내야

이종석씨가 북한주민들의 삶의 현장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소학교 어린이들의 일과, 생활총화의 방식, 관혼상제의 풍경, 노동자들의 배급방식, 최근 장마당의 물가와 단속실태, 실제 환율, 주민들의 교통수단 등등 북한주민들의 삶의 실체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관리소와 교양소, 교화소, 단련대의 차이에 대해, 각 수감시설의 인권실태에 대해, 위치와 연혁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공개처형은 어떠한 방식으로 실시되고 그동안 어떤 사람들이 어떤 죄목으로 죽었는지 들어나 봤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젠 이종석씨에게 씌워진 거품을 싹 거둬낼 때가 되었다.

그는 과연 명과 실이 상부(名實相符)하는 북한전문가는 맞는 것인가? 전문가라고 해도 고작 10년 동안 북한을 ‘책으로 익혀온’ 사람이 아닌가. 그것도 북한원전(原典)을 주요 텍스트로 하여 공부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통일 ∙ 외교 ∙ 안보를 책임지는 수장의 자리를 줄 수 있는가?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북한연구의 측면에서 보아도 이종석씨는 소장학자일 뿐, 20년 이상 학문적 성과를 누적해온 진짜 베테랑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 그가 NSC 사무차장이 되었던 것은 오로지 능력이 특출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이 정권의 사람들과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다. 내각이 재편될 때마다 ‘코드인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마 이 정권 들어 최대의 코드인사는 이종석씨가 통일부장관이자 NSC상임위원장의 자리에 앉는 사건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북한학과 교수를 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과 정전협정 이래 우리는 가장 중대한 통일 외교 안보의 전환기에 있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필요한 인물은 학식은 기본이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풍부한 현장경험을 갖춘 경륜있는 전략가이다. 이종석씨가 과연 그런 실력과 경륜을 갖춘 인물인가?

노무현 정부는 이종석씨에 대한 통일부 장관 및 NSC 상임위원장 내정을 다시한번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통일 외교 안보분야에까지 ‘코드 인사’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운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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