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국은 ‘진정한 대국 외교’로 가야 한다

중국의 외교적 표현은 원래 신중하다. 이번에 방한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총리가 선택한 표현도 신중했다.


원 총리는 28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제적 조사와 각국 반응을 중시하면서 사태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 입장을 결정하겠다”며 “중국은 그 결과에 따라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원 총리는 예정 시간보다 3배 정도 길어진 1시간 40분 동안 이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그는 중국어로 번역된 400쪽의 천안함 조사 결과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는 북한이 만든 ‘북한제 무기 카탈로그’에 나온 어뢰와 천안함 공격에 쓰인 어뢰가 동일 제품이라는 설명에 관심을 보였다. 원총리도 북한의 소행이 객관적인 사실(fact)로 드러났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했을 것이다. 


원 총리의 여러 외교적 표현들은 남북 어느 한 쪽으로 기울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현이 마치 증류수처럼 ‘모든 판단이 완전히 배제된’ 가치중립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규탄한다”며 “책임있는 국가로서 한국이 다른 나라와 함께 진행한 조사 결과와 이에 대한 각국의 반응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가 “중시한다”는 ‘각국의 반응’은 이미 나와 있다. 천안함 조사가 미국·영국·호주·스웨덴 등 4개국 공동으로 실시했고, 지난 20일 조사 결과 발표 후 세계 21개국과 각종 국제기구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원 총리의 발언에서 이미 ‘천안함은 북 소행’이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그가 이번에 선택한 표현 중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했던 용어는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비호(庇護)’는 ‘보호(保護)’와 차이가 있다. 잘못된 행위까지도 무조건 보호하는 것을 비호라고 할 수 있다. 원 총리는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했다. 원총리가 이 표현을 이번 시기에 사용한 것 자체가 이미 중국 내부적으로는 북한을 비판하고 있다는 나름의 함의를 갖는다.


지난 시기 중국은 북한을 ‘비호’해온 편이다. 특히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서 중국은 북한을 거의 무조건 비호해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도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서는 결코 한국, 미국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중국의 ‘북한 비호’ 입장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이었다. 이 시기부터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제재에 동참했고, 2009년 2차 북한 핵실험 때는 강력하게 북한을 비판했다. 중국이 실제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을 비판한 것은 북한 핵실험이 처음이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또다시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서 중-북 관계의 파열을 가져오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


중-북 관계는 이미 ‘혈맹관계’가 아니다. 6.25 전쟁 시기 결정적으로 맺어진 양국의 ‘혈맹관계’는 중국의 개혁개방 때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조선노동당 국제비서를 지낸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양국은 사실상 ‘사상적 동지관계’는 청산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 중국의 개혁개방을 계기로 중-북은 사상적으로 이미 동지관계가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분야 등에서 양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해관계, 흔히 하는 말로 ‘이해 당사자(stake holder)’ 관계가 되었다. 


거기에다 92년 한중 수교라는 결정적 계기로 양국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1997년 1월 덩 샤오핑 전 주석이 사망했을 때도 평양에 있는 중국 대사관에 조문조차 가지 않았다. 이후 중-북 관계는 오로지 정치 외교 군사분야에서의 ‘이해관계’만 중요해졌다. 따라서 김정일이 방중하면 한국 언론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양국간의 혈맹을 확인하고…” 어쩌고 하는 표현은 뭘 몰라도 한창 모르는 것이며, 그런 표현은 ‘사실상의 오보’나 다름 없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은 자국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만약 북한에서 갑자기 급변사태가 발생해서 그 영향이 중국과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경우, 그러한 사태는 현재 골머리를 앓고 있는 티벳과 신장 위구르 문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비호한다’는 국제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한반도의 안정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원자바오 총리의 표현은, 비록 우리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 볼 때는 ‘많이 나간’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중-북관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 시기에 두 가지의 매우 중요한 판단을 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첫째, 중국은 G2 국가로서 세계에서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나라다.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세우고, 국제법에 따라 지구촌의 질서를 바로 국제경찰 노릇을 미국과 함께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국제경찰이 김정일 정권과 같은 국제범죄자를 비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판단을 중국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은 지금 진정한 대국으로서의 외교 철학과 노선을 정립해야 할 시기라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앞으로 중국이 아무리 북한을 보호한다 해도 김정일 정권은 곧 수명을 다할 것이라는 판단을 해야 한다. 이는 또 가까운 미래에 닥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은 우선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해야 한다. 북한의 미래문제를 놓고 앞으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전략적 대화를  지금부터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향후 중국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중시하는 바탕 위에서 합리적인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은 ‘나 몰라라’ 식의 대응을 해서는 곤란하다. 만약 중국이 그렇게 나올 경우 국제사회는 중국의 G2 역할을 의심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이제 세계 평화와 정의, 국제법을 맨 앞줄에서 수호하는 진정한 대국 외교 노선을 가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건은 그 시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