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것은 ‘義兵운동’밖에 없다”

작금의 폭력사태에서 명백해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목숨을 내놓는 자만이 싸움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도심에서 경찰관과 신문기자와 언론사 사옥을 인민재판 식으로 구타하고 문초하고 파괴하는 폭력 시위자들은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살려고 하는 자는 비겁해지고, 죽을려고 하는 자는 용감해질 수 있다.

폭력 시위자들은 물론 우리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잘못 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보다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들처럼 우리는 목숨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믿는 신념을 위해서는 일신의 안위를 개의치 않고 전투 일선에서 온몸을 던져 싸우는 전사(戰士)의 모습-그들에게는 그것이 있고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

복면을 하고 새총, 쇠파이프, 돌멩이를 넣은 페트병으로 무장하고서 전경을 향해, 공무집행을 하는 경찰관을 향해, 그리고 보수언론을 향해 “너 죽고 나 죽자”로 돌진하는 전사들과, 이런 저런 사유로 좌고우면하는 이명박 정부나 보수진영의 싸움은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

‘촛불’ 초기에는 식탁안전을 우려하는 일반 대중의 순수한 시위참여가 그것을 간단히 ‘좌파’로만 색칠하기에는 부적절한 요인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조직원들과 맥아더 동상 파괴 집단, 평택 미군기지 반대 집단, 무슨 연대, 무슨 연대 그리고 또 무슨 연대 운운 하는 직업적 ‘이념 꾼’들의 총궐기가 사태의 본질을 ‘쇠고기’에서 ‘민족 민주 민중’ 봉기로 변질시켜놓았다.

이 결정적인 국면에서 저들의 전술적 요체는 명백하다. “보수는 겁을 먹고 있다. 그러니 이참에 겁을 바짝 더 주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심리적 우세감이 그것이다. 이른바 ‘보수’는 일신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을 뿐, 땀과 피를 흘리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을 저들이 일지감치 ‘알아 뻔진’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저토록 험악하고, 무례하고, 흉측하고, 무뢰배처럼 날뛰는 것이다.

‘누가 더 세게 나가느냐?’의 이 기(氣) 싸움에서 이명박 정부와 보수진영은 일패도지로 밀리고 있다. 한번 얕잡아 보이면 영원히 얕잡아 보인다는 만고불변의 철칙 그대로 말이다. 정치는 싸움이고, 싸움은 곧 전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미 정치와 싸움과 전투를 모두 포기하고 심리적으로는 이미 의주(義州)로 몽진(蒙塵)한 꼴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의병(義兵) 운동밖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과연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없다. 설령 있더라도 그들은 다수파는 아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꼭 다수파일 필요는 없다. 목숨을 내 놓겠다는 소수파만 있다면, 그들 ‘정병(精兵) 5천 결사대’는 대세를 한순간에 결정적으로 뒤바뀌어 놓을 수 있다. 우중(衆愚) 10만 명을 엘리트 결사대 100명이 얼마든지 무찌를 수 있다. 어차피 전쟁은 졸병과 졸병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장수와 장수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그 누구도 겁줄 수 없는 투철한 전사(戰士) 100명, 1000명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순교해야 한다. 이기려고 하는 자는 패할 것이요, 지려고 하는 자는 이길 것이다. 그들 정예 전사들은 “나 죽여라!” 함으로써,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길 수 있다. 부패한 재벌, 나약한 한나라당, 왔다 갔다 이명박 정부, 얌체 오렌지 보수, 전천후 기득권자들은 물러가라.

이 싸움은 그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아마겟돈 전쟁, 그래서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필사(必死)의 용사들만이 할 수 있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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