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선의 일기⑩] “ 이제부터 어떻게 할래? ”

▲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역 안이나 거리 안 모두가 캄캄했습니다. 우리는 역 안에서 가만히 서로 껴안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해도 춥고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깨어보니 아침이었습니다. 역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발을 밟아서 눈을 뜨게 된 것 같았습니다.

“오빠 이제부터 어떻게 할래?”

중국에 간다고는 했지만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가야 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응…. 빨리 누구한테 물어보자.”

오빠는 그렇게 말했지만 경찰한테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역을 나와 거리를 걸어가면서 좀 점잖아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중국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됩니까?”

오빠가 물어보니까 그 남자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중국? 너희들 둘이서 가는가? 부모는 없는가?”

우리들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 무산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는 것. 양부모가 굶어 죽어서 꽃제비가 되어 시장에서 방황하고 있거나 강을 건너 중국에 가는 애들이 적지 않다는 등..

나는 그제서야 북조선은 어디나 똑같다는 것, 나라 전체가 굶어 죽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두만강을 건너다

“여기를 쭉~걸어서 가면 두만강이라는 강이 나온다. 그곳을 건너면 중국이다. 봐라!저~기 보이는 산, 저것은 중국의 산이다. 지금은 강도 얼어붙어서 너희들이라도 간단하게 걸어서 건너갈 수 있을 거다.”

남자는 그렇게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한숨을 쉬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통 강 양측에는 각기 그 나라의 군인이 있다. 북조선의 경비병 같으면 애들은 못 본체하고 내버려둘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의 군인한테 들키면 꼭 북조선으로 되돌려 보낸다. 그러니까 좀더 강 상류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 쪽이 강폭도 좁고 건너는데 편할 것이다. 먼저 나무 그늘에 숨어서 군인들이 있나 없나 잘 살펴본 후에 단숨에 강을 건너가라.”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 우리들은 두만강 상류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산이라는 곳은 추워서 걷고 있어도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 나왔습니다.

해는 떠올라 햇빛을 비추어 주는데 얼굴은 따끔따끔 아프며 발은 동상에 걸렸는지 거의 감각이 없었습니다. 얼마간 걸어가다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이 말해 준 대로 강가의 수풀속에 몸을 숨기고 거기서 강의 양편을 살펴보았습니다. 주위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습니다.

아무튼 군인들은 없는 게 확실했습니다. 그래도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이 우리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니 무서워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오빠가 말했습니다.

“됐다.. 희선아 가자~”

오빠가 내 손을 잡고 끄는 바람에 나도 일어섰습니다. 우리들은 손을 꼭 잡은 채로 얼어붙은 강을 재빠르게, 그러나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건너갔습니다. 강의 중간 지점까지 가서 뒤를 돌아보니 하얗게 내려 덮인 눈 위에 우리들이 걸어온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던지 군인들한테 발견되지 않기를…’

나는 마음 속으로 그것만을 빌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길고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강을 건너와 있었습니다.

그곳은 중국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강 건너편에 남아있는 북조선 땅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강 건너에는 북조선의 산들이 아름답게 눈 화장을 한 채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안녕히…. ’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조국에 작별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1997년 1월 18일 낮이 조금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The DailyNK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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