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강 사위 차철마 권력형 자본 상징”

▲ 버스를 기다리는 평양 주민들

‘북한이 변하고 있다’

최근 북한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인 장사의 성행, 대규모 자산가의 출현 등의 현상은 경제 부문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최근 펴낸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간행물을 통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 이후 북한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변화의 양상들을 조명했다.

북한은 1990년대 경제난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고 국가 중심의 계획경제가 붕괴하게 된다.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돈에 대한 가치’를 터득하고 생활을 경제적으로 꾸려가는 과정을 배우게 되었다고 책은 분석하고 있다.

또한 개인의 경제 활동이 확대되며 상대적으로 사회적 통제가 약화되고 있는 현상이 증가하였고, 당과 집단보다는 개인의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고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의 경직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범위가 지극히 한정적 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경제 개혁과 관련해 근본적으로 딜레마를 겪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책에서 소개한 북한의 주요 변화 양상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 평양의 통일거리 시장

◆ 北 시장에도’보이지 않는 손’ 작동=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2005년 연초에 북한경제 관련기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북한에서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게 바로 시장이다.

7·1조치 이후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개편하는 등 시장경제 마인드가 유통부분에서 더욱 확산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 농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공업제품도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종전의 ‘농민시장’을 전용건물에서 상설 운영되는 ‘종합시장’으로 전환했다.

종합시장이나 거리의 매대를 통해 개인 상업활동이 허용되면서 대·중·소 규모의 상인계층이 등장하고 있다. 실리 경제를 잘 활용하고 장사수완이 좋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윤추구에 기초한 서구식 합리주의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도 깊이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이 뒤늦게 시작한 ‘보이지 않는 손’의 실험이 성공할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체제의 경직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범위가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경제개혁과 개방이 갖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 ‘노력영웅’ 지고 ‘투잡족’ 뜬다=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집단주의적 노동의식이 점차 이완되고 있다. 공장에 나가도 할일이 없고 임금만으로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북한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기보다 대부분 부업이나 개인 장사에 몰두하기에 이른다.

새터민들에 따르면 7·1조치 후 본 직업보다 돈벌이가 되는 또 다른 경제 활동에 더 열심인 ‘투잡스족’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노력영웅이 되는 것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노동하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집단주의적 노동의식의 이완은 직업에 대한 관념도 바꾸어 놓았다. 예컨대 엘리트 계층들의 경우 당·정무 직종보다는 외교관 및 대외사업요원을, 일반 주민들의 경우 식량 자급이 용이한 농업과 개인 수입이 높은 상업일꾼 부수입이 좋은 상점 점원·운전기사·사진기사· 식량배급소 기표원 등 서비스직과 어로공(어부) 등을 선호하다고 한다.

▲ 조선부강회사의 전승훈 사장이 자사에서 생산한 오토바이 광고물에 등장했다.

◆ 북한에도 재벌 회장 등장=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7·1조치를 취하면서 북한에서도 재벌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계열사 9개 해외지사 15곳을 거느린 다양한 업종의 문어발 대기업 ‘조선부강회사’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조선부강회사 홈페이지에서 회사 규모를 살펴보면 자본금 2천만 달러에 연평균 거래액이 1억5천만 달러에 달한다. 북한 경제규모에 비춰볼 때 엄청난 것이다.

부강그룹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사령탑은 전승훈과 영훈 형제다. 50대 초반의 전승훈 사장은 탄자니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김일성종합대학 영어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사업가로 변신한 인물로 영어실력은 북한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40대의 전영훈 씨는 노동당 재정경리부 소속 회사의 사장으로 북한의 디젤유 수입을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형제는 전명수 전 중국주재 대사의 아들로 일찍부터 국제 감각을 갖추고 대외 무역에 뛰어들어 부를 축적해왔다. 현재 이들의 개인자산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 씨 형제가 재벌형 신흥 자본가의 대표주자라면 차철마는 권력형 자본가로 북한 사회에서 수위를 달린다. 중국을 중심으로 외화벌이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차 씨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소속 외화벌이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데 그의 개인 재산은 1천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이제강 제1부부장의 사위로 장인의 후광을 업고 있다. 여름에 평양 시내에서 버뮤다 팬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자유분방한 것으로 알려진 차 씨는 ‘누구의 후광을 입었든 자본주의식 사고로 사업을 해 성공한 대표적인 북한 사람’으로 평이 나있다.

◆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조직 생활’은 둘째=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가족생활, 직장이나 학교생활 그리고 조직생활이다. 조직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항목으로 ‘무덤에서 요람까지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난으로 조직의 정규모임에 참가하지 않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에 나가도 임금을 받지 못하고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자 스스로 식량을 구하고 장사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식량을 구하러 농촌에 가려면 적어도 보름에서 한달은 걸리고 간단한 음식이나 생필품을 파는 장사를 하면서 규정대로 조직 활동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 주민의 90%가 장사에 나설 정도로 장사가 보편화되며 경제난 이후 조직 참여율은 30~60%로 떨어졌다.

▲ 북한의 결혼식 장면

◆ 결혼, 그거 꼭 해야 됩네까?=북한에서 현재 최고의 결혼 상대는 돈 잘 버는 사람이다. 과거 북한 여성들은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 상대의 신분과 사회적 전망을 주로 보았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제대 군인, 당 간부 보다는 장사 잘하는 사람, 외화를 벌 수 있는 사람이 여성들에게 최고의 결혼 상대가 됐다.

남성들 역시 미모보다는 돈 많은 여자에게 호감을 더 갖는데 이는 사회가 경제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상의 여자와 연하 남자의 결혼 비율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결혼 풍습도 간소해지고 있다. 경제난 이전에는 여자는 살림살이를 남자는 주택을 책임졌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혼수로 간단한 예복을 주고받는 정도로 줄었다. 주택 배정도 늦어져 부모님 집에 머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여성관에는 획기적 변화가 일고 있다. 되도록 결혼을 늦게, 혹은 안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여성들이 돈벌어 오기만 기다리는 남성들을 위해 결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혼 이후에도 자신이 장사를 해서 무책임한 남편을 부양하면서 권위적인 남편을 섬겨야 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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