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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보는 시선은 찬반 양론으로 나뉜다. 전쟁이 격화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기에 찬성이라는 부표를 붙이기엔 다소 곤란한 측면이 있지만 아무튼 이스라엘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과 이를 극렬히 반대하는 쪽(헤즈볼라를 이해하는 쪽)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헤즈볼라의 입장에서 보는 사람들은 상대적 약자로 비치는 헤즈볼라에 대한 동정과 함께 이스라엘을 비난한다. 첫째, 자국 병사 2명을 구하고자 수십명의 인명 살상을 외면하며 엄청난 포화를 쏟아 붓는 이스라엘의 처사는 너무나 지나친 것 아니냐. 둘째, 그동안 수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이-팔 문제가 단순히 양자간의 문제가 아닌 역내 아랍 국가들은 물론 미국을 위시한 열강들의 개입까지 부르는 세계 전쟁의 심각한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렇게까지 쉽게 전쟁을 선포하고 밀어부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첫째, 국경을 순찰 중인 군 차량에 로켓포를 쏘고 병사를 살상한 것도 모자라 납치해간 병사를 인질로 협박하는 무장 세력에게 응당한 공세를 취하는 것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결단의 문제이거나 전략적 결행의 문제가 아닌가. 둘째,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온건 세력은 평화적 협상을 우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노력해 왔는데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강경 세력이 항상 문제를 일으켜 그동안의 평화 협상을 무위로 돌리며 문제를 원점에 회귀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팔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세계에서 분쟁의 회오리 속에 놓인 그 어떤 분쟁도 어느 일방의 입장이나 현상적 모습만 가지고 감정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파악하는 오류나 착각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헤즈볼라, 이스라엘- 아랍간 확전 원해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고 비겁한 양비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향해 전개하고 있는 무력 공격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동시에 이번 전쟁의 불씨가 된 헤즈볼라의 무장 공격과 인질극도 충분히 원인 제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 기회에 헤즈볼라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기로 작정했다. 헤즈볼라도 애당초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원했던 만큼 전면전을 마다할 리 없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스라엘-아랍간의 확전으로 비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와 함께 이스라엘의 양대 골치 거리다.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북부를 교란하는 동안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남부를 공략하는 식으로 위 아래에서 시달렸던 것이다. 현재의 전면전 양상도 이스라엘은 남부의 가자 지구와 북부의 레바논에서 동시에 2개의 전선이 촉발하면서 교전에 들어가게 된 형국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벌인 ‘2일 전쟁’의 이듬해인 1983년에 결성된 시아파 무장 단체이다. 그들은 1984년 쿠웨이트 항공기 납치 테러, 1987년 프랑스 항공기 납치 테러 등으로 악명높다. 레바논 내에서 유일하게 민병대를 보유한 합법적 정치 조직이기도한 헤즈볼라는 600여명의 게릴라 정예 대원을 거느리며 3000여명의 예비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병력면에서는 4만여명의 정규군을 보유한 레바논 정부군에 뒤지지만 화력 면에서는 오히려 월등할 정도이다. 특히 이스라엘을 향해 13000기의 로켓포를 장전하고 있으며 사거리 200km 가 넘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여 이스라엘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이 모든 화력은 시리아로부터 지원된 것이라 보면 된다. 시리아는 헤즈볼라의 절대적 후원자이다.
헤즈볼라는 2005년 총선에서는 합법적 정치 공간으로도 진출해 전체 128석 중 14석을 획득하는 독자적 정치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장관 1명을 배출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친시리아 정치세력까지 모두 합치면 총 38명의 의석을 구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3분의 1이상의 정치 권력을 확보한 셈이다. 레바논의 정치지형은 중동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종파 구성을 반영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가 45%, 이슬람 인구가 50%정도를 차치하며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가 약 반정도씩으로 나위어 진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기독교에서, 총리는 수니파에서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맡는 식으로 권력을 배분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한 친시라아 세력이 3분의 1 이상을 장악했다는 것은 정치 공간에서도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문제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게 되면 아랍 민중들은 평소에는 헤즈볼라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심정적 동조자로 돌변할 수 있다. 물론 아랍 민중들 속에서도 헤즈볼라나 하마스와 같은 강경 집단에 강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내부와 아랍 전체에서 강경 집단보다 온건 집단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현 상황에서도 아무리 이스라엘의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감행되고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이슬람의 성전을 선동한다 하더라도 아랍의 반응은 시원찮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란, 시리아 참전 여부가 향배 결정
아랍 연맹 회의에 모인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아랍 주요국들은 이스라엘을 비나하면서도 헤즈볼라를 동시에 비난하면서 과도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중동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힐난하였다. 자국 영토가 화염에 뒤덮이는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정부의 대이스라엘 대응 수위가 다소 미지근한 데에는 레바논의 복잡한 정치 구조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랍 전체의 반응마저 양비론이 지배하는 현실은 아랍의 민심도 헤즈볼라와 같은 강경 세력의 발호에는 쉽게 동조해 나설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헤즈볼라가 기도하는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간의 확전이 되자면 현재로선 헤즈볼라의 절대 후원자인 시리아가 나서는 것이며 동시에 또 하나의 거대한 후광으로서 시아파 신정 정부이자 강력한 무력까지 보유한 채, 최근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겠다’는 폭언까지 일삼으며 반미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이란이 개입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시리아와 이란은 연일 이스라엘과 미국을 맹비난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참전을 선언하고 있진 않다.
헤즈볼라에 대해 시리아와 이란이 국가 차원에서 동참해 전쟁에 돌입한다면 이는 복수의 아랍 국가를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5차 중동전쟁이 되는 것이다. 국제 사회는 물론 아랍 스스로도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은 1982년에도 레바논 지역을 공격해 시리아와의 전면전으로 번져 ‘2일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시리아는 85대의 전투기를 잃고 이스라엘은 단 한대의 전투기를 상실하면서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종전하였다. 그 후 레바논에 진주한 이스라엘군은 비슷한 시기 창설한 헤즈볼라에 의해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으며 93년과 96년에는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펼쳤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2000년 이-팔 평화 무드 속에서 이스라엘은 레바논으로부터 전격 철수했다. 대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시리아를 직접 겨냥한 유엔 결의안 1559를 채택하는데 성공하였다. 결의안의 핵심은 “레바논에서 외국군 철수, 공정하고 자유로운 총선 실시, 모든 레바논 및 외국 민병대의 무장 해제” 였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레바논으로부터 시리아군을 모두 몰아내고 동시에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의 고리까지 완전히 끊고자 하였다.
한편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전쟁중단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으로 좌절되었다. 미국 또한 확전을 원치 않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은 정당성을 지니며 헤즈볼라의 로켓포가 이스라엘의 수도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이스라엘만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시리아와 이란에 대해서는 대립을 지속해온 터라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만큼 헤즈볼라에 대한 제어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 미국의 처지가 미국의 외교적 노력에 한계를 지우고 있는 현실이기도하다.
이스라엘도 헤즈볼라도 서로 원했던 충돌이 다시 한번 중동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을 것인가. 세계인의 우려가 깊은 가운데 그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