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 사건’ 36년만에 재심청구

“죽기 전에 진실만 밝혀지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지난 196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에 연루돼 21년을 복역한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67)씨가 지난 13일 서울형사지방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배씨는 1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꿈만 같다”면서 “그 동안 여력이 안돼 재심청구를 못했는데, 이제야 친지들 앞에 떳떳하게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수근 사건’에 관심을 가져온 동호합동 법률사무소의 이진우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배씨는 “나이 서른에 감방에 들어가서 인생의 황금기를 그곳에서 다 보냈다”면서 가족이 파탄난 것은 물론, 현재는 식구들과 연락이 끊긴 채 혼자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또한 출소 후에도 고문 휴유증과 재소자라는 낙인으로 단 한번도 제대로 취업도 못해본 채 형제들의 도움으로 힘겹게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배씨는 “이수근씨는 절대 간첩이 아니다”면서 “이수근씨의 성격은 자유분방했으며 돌출행동도 잘했던 것으로 기억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성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수근 사건’은 1967년 3월 당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이씨가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 242차 본회의가 끝나자마자 유엔군측 영국군 대표인 밴 크러프트 준장의 차에 올라 남측으로 귀순하면서 비롯됐다.

이씨는 남측에 도착한 뒤 대대적 환영과 당시로서는 엄청난 1천만원이 넘는 정착금을 받았으며 인기 여가수와 염문을 뿌리고 대학교수와 결혼하는 등 온갖 화제를 뿌리며 다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중앙정보부에서 이씨가 각종 강연회나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고급정보에 대한 발언을 삼가고 김일성에 대한 심한 비판도 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로 이씨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당국의 계속되는 감시와 심문이 계속되자 이씨는 결국 자신의 처조카 배씨와 함께 한국을 탈출, 캄보디아로 가던 중 경유지인 사이공 탄손누트 공항에서 1969년 1월 한국 중정요원들에게 검거됐고 6개월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체포 당시 이씨는 콧수염, 가발, 중절모와 안경으로 위장해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배씨는 위조여권제작과 국가보안법위반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어 배씨는 몇 년 뒤 21년형으로 감형된 후 1989년 12월에 출소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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