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애국가 발언은 ‘NL 총결집’ 마지막 호소

대한민국을 부정하면서도 북한의 3대 세습에는 무조건 지지를 표명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현실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이런 사실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과민하다고 탓하기도 했다. 음습한 메카시즘 정도로 치부된 것이다. 무척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국민들을 탓 할 일도 못된다. 국민들의 눈 높이는 늘 ‘상식’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60여년간 대한민국이 일군 성취와 김씨 왕조 세습이 빚어낸 참상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땅에 태어나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이제 서른도 안된 철부지 왕자 김정은을 한반도 혁명의 ‘지도자’로 추종한다는 것 부터가 ‘몰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철저히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 있으며, 애국(愛國) 애민(愛民) 애족(愛族) 통일(統一) 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처럼 행동해 왔던 점에서 국민들은 이들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NL(민족해방)이라 알려진 구(舊) 주사파 운동세력과 현 종북세력은 국민들의 감정을 읽어내고 이를 정치구호로 재생산하는 일에 매우 능숙했다. 옷속에 칼을 품고 있으면서도 가장 인자하고 헌신적인 표정을 짓고 국민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우리 국민들이 그들의 민낯을 제대로 발견할 길이 없었다. 


최근에서야 종북세력들이 발가벗고 깨춤 추고 있는 덕에 그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개정당 안에서의 권력, 수 십억대의 국고보조금, 수뇌급 인물들의 개인적 야망 등이 버무려져 한편의 막장 드라마처럼 뻔한 종말을 향하고 있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야 그들만의 관행이었다 하니 눈감아 준다 친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역시 폭력으로 기형화되어 버렸다. 가장 민주적일 것이라 믿었던 이들에게 국민들의 ‘상식’은 당혹스러울 만큼 처참하게 유린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배지 만큼은 포기못하겠다는 그들의 당당함은 온갖 기득권자들의 오만함을 다 모아놓은 듯 하다.


이 와중에 이석기 씨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발언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이 무척 소란스럽다. 국민들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우리에겐 애국가가 없다”고 발언한 것 대해 충격과 허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석기 씨는 왜 이런 발언을 하는가? 그는 정말로 성인이 된 이후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불러본 적이 없는 인물인가? 특히나 그가 평생에 걸쳐 혐오해왔던 조중동 등 보수 일간지 기자들까지 불러놓고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무엇일까? 지하에만 꽁꽁 숨어 있던 탓에 치부를 가리는 방법을 훈련하지 못한 탓인가? 아니면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의도적인 도발인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비리와 이후 당내 대응과정에서 종북세력은 철저히 고립되고 있다. 통진당 혁신비대위는 이 씨와 김재연 등에 대해 제명절차를 밟고 있으며, 이 씨 소유의 CN커뮤니케이션즈는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까지 받고 있다. 이대로 가면 종북세력의 미래는 뻔하다. 이 씨는 “정의감으로 불타는 20대의 운동권의 심정으로 국회에서 열심히 하겠다”며 마치 억압받는 ‘사상범(思想犯)’처럼 처신하고 있지만, 그가 해명해야 하는 현실은 경선부정, 폭력, 국고보조금 횡령 등 이른바 ‘잡범(雜犯)’ 혐의 뿐이다.  


따라서 이 씨는 이쯤에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그의 선택은 지금까지 종북세력이 보여줬던 ‘유연함'(?)을 상기해 볼 때 반전을 뛰어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운동권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대중과의 눈맞춤(eye contact)’마저 휴지조각처럼 내쳐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종북세력에게도 태극기와 애국가는 자주 사용되는 아이템이었다. 그들은 공권력에 맞서는 행동이 필요할 때마다 태극기를 둘러메고 ‘애국’의 이미지를 형상화 했다. 국민들을 시위 현장에 불러모으기 위한 ‘투쟁의 현장’에서 애국가 역시 단골 메뉴였다. 국민들은 이를 ‘애국 열정’으로 평가해줬다. 특히나 90년대 NL운동권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북한의 혁명가요를 경쟁하듯이 불러 제꼈지만,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태극기를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제창해 왔다. 이는 90년대 학생회와 노조를 체험했던 수백만의 국민들이 공유하는 집단 기억이다. 종북세력은 이를 ‘대중노선’의 하나 정도로 치부했지만 말이다. 


따라서 이 씨가 오래전부터 애국가에 대해서 그토록 심각하게, 이색적으로 고민을 해왔다고 볼 정황은 충분치 않다. 그는 17대 국회 개원 당시 정장을 거부하고 캐주얼 의상으로 등장했던 유시민 전 의원처럼 ‘초선의원의 치기(稚基)’를 부릴 형편도 못된다.  결국 이 씨의 애국가 발언은 통진당 혁신비대위의 반(反)종북 노선을 질타하고 구 민노당 세력, 즉 범NL진영의 총결집을 요청하는 마지막 ‘구조신호’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보라. 지금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을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엄혹한 미제(美帝)식민지 독재 상황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친미주구(走狗)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동지들의 등에 비수를 꽂을 셈인가? 아니면 동지들의 사소한 실수를 포용하고 반미반독재통일 전선(戰線) 복구에 나설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 씨가 범 NL진영에 보내는 메시지다. 만약 통진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이 말 같지도 않는 이석기 씨의 ‘애국가 발언’ 발언을 두고 조금이라도 ‘비판’ 하게되면, 결국은 ‘새누리·조·중·동’과 야합하는 것으로 몰아 갈 수 있다. 그 결과 강병기 전 경남정무부지사가 통진당 대표로 선출된다면 이 씨와 그 동료들은 마지막 실낱같은 기회를 붙잡게 된다.  말 그대로 극약처방이다.


이 씨의 작전이 얼마나 통할지는 통진당 전당대회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매우 분명한 것이 있다. 그의 뜻대로 범NL진영이 재결집하여 통진당 당권을 장악하는 순간, 국민들에게는 통진당이 종북세력의 야합에 넘어간 반(反)진보정당으로 각인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석기 씨는 과연 자신의 도발적 발언을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한번이라도 고민해 봤을까?


그의 머리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최근까지 그의 인생 경로를 보면 국민정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종북이 반(反)진보로 규정되는 이유는 ‘민중관(民衆觀)의 결핍’ 때문이다. 그들은 민중에 대한 애정으로 채워야할 자리를 신격화된 수령관으로 메꾸고 있다. 북한 민중들이 겪고 있는 그 처참한 상황을 모조리 부정하고 3대 부자세습을 옹호하는 논리구조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런 사고체계에서 대한민국 국민정서를 고려할 여유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씨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나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