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순탄한 남북관계만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19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통지문을 보냈다. ‘최고존엄에 대한 도발을 반복하면 예고없이 가차없는 보복행동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보다 며칠 전 보수단체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정은 제1비서 화형식을 진행한 것에 대한 반발로 해석됐다. 12월 24일에는 김정은 제1비서가 남포의 군부대를 방문해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며 대남 위협성 발언을 늘어놓았다. 장성택 숙청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적 긴장 고조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북,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언급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 제1비서가 직접 읽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들고 나왔다. 우리 문제로 국제공조를 하는 것은 사대매국 행위라며 남한 정부를 비난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복행동’과 ‘전쟁’을 언급하던 데에 비해보면 하나의 반전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북한은 1월 6일 우리 정부가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은 정작 거부했다.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상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느냐’면서, 한미군사훈련이 없는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금강산관광 등에서 얻어갈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고도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하는 모양새는 아무리 봐도 겸연쩍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북한은 1월 16일 국방위원회의 이른바 ‘중대제안’이라는 것을 통해, 남북 간 비방중상과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중지하자며 우리 정부에게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1월 24일에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이번에는 북한이 먼저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좋은 계절에 마주 앉자’며 상봉을 거부했던 북한이 또 한번 입장 변화를 보인 것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서 ‘설이 지나 날씨가 풀린 다음’이라는 시기를 제시했다. 설이 지나 날씨가 풀리는 시기는 대개 2월말부터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 시기와 겹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상봉 제안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이유로 한미훈련 중단을 압박할 복선이 깔려있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한미훈련 직전으로 시기를 잡아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자, 북한의 의사결정이 또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1월 29일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안한 만큼 28일까지는 답을 줘야 했지만, 북한은 제때 답을 주지 않았다. 특히, 28일 북한은 오후 4시 업무가 종료되는 판문점 연락관에게 연장근무를 요청하고도 2시간 뒤 ‘전달할 내용이 없다’며 연락관 접촉을 마감했다. 우리 측 제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될 지를 놓고 평양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설 연휴가 지난 2월 3일 북한은 적십자 실무접촉을 수용했다. 그리고 5일 이뤄진 실무접촉에서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순순히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다. 한미훈련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기존의 태도와 또 다시 달라진 모습이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하루 만에 다시 돌변한다. 북한은 6일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 행사를 위험천만한 핵전쟁 연습 마당에서 치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한미군사훈련과 이산가족 상봉을 연계하는 전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12일과 14일의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의 ‘통 큰 양보’로 다시 선회하기에 이른다.
 
왔다갔다 하는 북한의 대남정책 


김정일 집권 시기만 해도 북한의 행동 방식은 상당 정도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상당 시간 하지 않았고, 핵실험을 하겠다면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물론 예전에도 6자회담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참가 의사를 밝히는 등 상황에 따라 입장이 바뀌기도 했지만, 적어도 예상 가능한 단기간 내에 정책 방향이 표변(豹變)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을 보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자신들이 공언한 말을 불과 며칠 사이에 뒤집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런 잦은 ‘돌변’은 핵(체제보위)과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모순적인 병진노선에서 오는 고민의 결과로 보이지만, 이러한 가변성이 김정은 정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던져주는 것도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것은 다행이지만, 향후 남북관계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