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단체상봉 이모저모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 마련된 제11차 이산가족 상봉장은 55년 간의 긴 이별을 말해주듯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가득 찼다.

=“아들이 있었다니…”=

0…박문기(76)씨는 북측의 동갑내기 아내 임순희씨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헤어질 당시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아들.

황해도 연안이 고향인 박씨는 전쟁 당시 서울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다 1.4후퇴 때 아내와 생이별을 했지만 아내가 임신한 사실은 전혀 몰랐다.

당연히 이번 이산가족 상봉신청서에도 아들의 이름은 넣을 수 없었다.

박씨는 “고향이 38선 이남이라 아내와 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아들까지 있었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있는 줄만 알았어도 이번에 만났을 텐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90대 노모, 먼저 간 아들 사진에 오열=

0…남측 최고령자인 박간남(97) 할머니는 북녘 손자와 손녀를 만났다. 한시도 잊지 못했던 아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1950년 6.25전쟁 당시 18세였던 아들 김시하씨는 군에 끌려갔고 그 후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박씨가 상봉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손녀 종숙씨와 손자 종호씨는 “할머니, 제가 시하 아들입니다”, “제가 딸입니다”라며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박씨는 아들을 쏙 빼닮은 종호씨에게 “너는 애비를 많이 닮았구나”라며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자 “니 애비는 왜 죽었냐, 55년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다가 이제와 죽었다니”라며 통곡했다.

종숙씨는 “아버지는 전쟁 때 많이 다쳐서 영예군인(상이군인)이 됐고 오래오래 사셨다”며 가족사진이 든 앨범을 꺼냈다.

앨범 속 젊은 아들의 모습을 본 노모는 “아이고 아이고…”라면서 눈물을 흘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손자손녀 얼굴이라도 보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오늘이라도 숨 떨어지면 그만인데 손자손녀 얼굴이라도 보니 매우 좋다”고 말했다.

박씨는 노환 때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데다 거동도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손자손녀의 손만은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아흔의 아버지 “딸들아, 폭탄이 가로막았구나”=

0…또 다른 최고령자인 평양 출신의 최재선(97)씨는 이번에 북에 두고온 세 딸을 만났다.

최씨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양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며 부인과 1남3녀를 뒀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피난을 내려오려 했지만 태어난 지 6일밖에 안된 아들과 함께 움직일 수 없어 가족을 두고 홀로 남으로 향했다.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고생도 많이 했지만 가족을 두고 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최씨는 이날 세 딸을 만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려 했는데 폭탄이 우리를 가로막았구나”라며 애통함을 드러냈다.

딸 순영.순희.순실씨가 “어머니의 사진”이라며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을 꺼내놓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씨는 아내의 사진을 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나..못 알아 보겠어요?”=

0…북쪽의 아내와 아들(59), 딸(56), 여동생(77)까지 한 자리에서 만난 권상학(82)씨는 한동안 멍하니 가족들의 얼굴만 바라봤다.

상봉 전에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포기할까 하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이뤄진 만남이었지만 50여년을 떨어져 지낸 아내와 자식의 얼굴에서 옛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은 듯 했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권씨는 전쟁 전 평양에서 하던 사업이 번성해 식구들을 모두 평양으로 데려갔지만 곧 전쟁이 터졌고 홀로 남하,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됐다.

이날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권씨에게 아들 홍수씨는 “아버지, 제가 홍수예요. 홍수”라며 큰 소리로 말했지만 아버지는 환갑을 앞둔 아들을 보며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라는 말만 되뇌며 고개를 떨궜다.

50여년 간 홀로 자식을 키워온 아내 오리섭씨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이 못내 섭섭한 듯 “나 못 알아 보겠어요”라고 물으며 “세월이 너무 흘렀어”라며 탄식했다.

권씨를 동행한 남쪽의 아들 영상씨도 북녘의 이복 형제들을 보면서 “핏줄이라는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아리땁던 아내의 머리는 하얗게 세고=

0…이문용(83)씨는 북쪽의 부인 한승운(76)씨와 아들 홍덕씨와 해후했다.

피난 시절 이씨가 양식을 찾으러 나간 사이 사려져버린 아내와 아들이었다.

꽃다운 시절에 헤어져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아내는 꿈에 그리던 남편을 눈 앞에 두고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가 아내에게 다가가 “왜 아무 말도 안 해”라며 손을 잡자 아내의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열 밤 자고 만나자던 엄마…=

0…1.4후퇴 때 황해도 연백에서 젖먹이 두 딸을 친척집에 맡겨둔 채 피난을 내려온 김기섬(86)씨도 두 딸과 상봉했다.

노모는 어느덧 환갑을 넘긴 두 딸 희순(63).희자(61)씨에게 “엄마가 ’열 밤만 자고 올께’라고 했는데 이제야 보게 됐다”며 “내가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평양봉사대원 “함께 사는 날 빨리 오길”=

0…이날 상봉장에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20대 초반의 여성 접대원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북측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리자 평양에서 온 ’봉사대원’ 20여 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한 봉사대원은 “(상봉 가족들을 보니) 내 친부모, 친형제를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며 “앞으로 이런 상봉장이 마련되지 않도록 (통일이 돼) 함께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령 상봉자 ’멀미 조심’=

0…해금강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남측 상봉자들 가운데 멀미를 호소하는 인원이 속속 나오고 있다.

북한 장전항 안쪽에 자리잡은 해금강호텔은 바다에 떠 있는 선상호텔로 고령의 상봉자들은 호텔의 흔들림에 멀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식사 중 구토를 하거나 의료진에게 멀미약을 구하는 상봉자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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