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성’ 對北삐라 안돼…‘진정성’ 잃지 말아야

남북한 체제경쟁 시기였던 60~70년대에 성행했던 ‘삐라’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주요 화제로 급부상됐다. 북한이 12일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등 초강경 대남 압박카드의 원인으로 민간단체가 삐라 살포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달 2일 남북군사실무접촉에서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개성공단 사업의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남북관계 전면중단” 등 경고성 발언을 잇달아 쏟아낸 후 실질적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그동안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선(先) 이행’을 촉구하면서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에 돌입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선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꿈쩍도 하지 않자, 김정일 건강이상 등의 내용을 담은 ‘삐라’ 문제를 거론, 꼬투리를 잡더니 효과가 없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도 13일 “삐라는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는데 (북한이) 그때는 아무 소리 안 하다 현 정부 들어 문제를 제기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꿈쩍도 안 하니까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급한 마음을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북한의 조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불만과 남한 내 ‘햇볕’ 주의자들의 정치공세로 이어졌다. 이들은 “정부가 막지 못하면 우리가 몸으로라도 막겠다”, “삐라 대량살포가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정부에 보다 강력한 수단을 촉구했다.

개성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이미 투자된 시설과 남북 근로자들이 ‘볼모’로 잡힌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을 이용한 북한의 ‘삐라’ 공세가 효과를 거두는 모습이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남측 84개 업체가 가동 중이며 3만5천500여 명의 북측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삐라 보내기를 주도하는 민간단체의 지속 의지도 분명하다. 삐라 보내기를 하고 있는 한 민간단체는 “전단지 살포는 개성공단이나 모든 문제와 관련이 없다”며 “앞으로도 대북 삐라(전단지) 살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삐라 살포 중단’ 주장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 간 채택된 ‘6·4합의서’에 포함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모든 선전활동 중지’와 ‘방송과 게시물, 전광판, 전단 등을 통한 선전활동과 풍선, 기구를 이용한 각종 물품 살포 중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기관 사이의 합의는 그 바탕에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따라서 민간단체의 선전활동을 금지시키는 것은 범위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삐라 살포를 제지할 수 있는 마땅한 법적 근거도 없다.

또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이명박 역도’니 ‘역적 패당’이니 현 정부를 향한 비난 강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이 당국 간 합의사항을 어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를 정부가 뒤에서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그동안 남한 정부를 공갈 협박해 현금과 물자를 제공받으면서 눈감았던 삐라 문제를 이명박 정부에 와서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민간단체가 북한에 띄워 보낸 ‘삐라’는 외부의 정보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청량제와도 같다. 때문에 ‘삐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탈북자 단체들이 주로 나서 삐라 보내기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라 보내기를 주도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2003년부터 대북 삐라 보내기 운동을 앞장서 전개해온 기독북한인연합의 이민복 대표는 “최근 대북 전단 살포는 너무 보여주기식 행사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우려스럽다”며 “대북 전단 발송은 인권운동이지 정치활동이 아니므로 전단을 보내는 단체들은 보다 ‘진정성’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북한 인민들을 상대로 보내야 할 삐라가 남한 언론을 향해 보내는 ‘이벤트성’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뼈있는 지적이다.

민간단체는 ‘삐라’의 대상이 남한 인민이 아닌 북한 인민인 만큼 언론에 노출시켜가며 시끄럽게 할 문제는 아니다. 북한 인민 한명이라도 더 볼 수 있게 차분하고 조용하게 진행하면 된다. 특히 요즘같이 북한 당국과 남한 내 친북좌파 세력에게 ‘남북관계 단절’의 진원지로 공격당할 수 있는 시기에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전략적 선택도 고려가 필요하다.

때문에 “정부 입장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 도전하며 불필요하게 소란스러우면 일을 그르쳐 전체에게 해를 줄 위험성이 있다. 진실로 지혜스럽게 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 이민복 대표의 진언을 한 번쯤 상기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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