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100일…대북정책, 원칙 세우고 꿋꿋이 가라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해마다 6월이 되면 어김없이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곤 하였다.

남북한 지역을 서로 오가며 공동행사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고, 남한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며 행사를 장려하였다. 6·15공동선언 실천과 이행을 위한 목적으로 일련의 단체와 기관들이 조직되었고, 더 나아가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운동까지 전개되기도 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6월은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지만 지난 8년 동안 우리 사회의 관심은 6월 15일에 집중되면서 현충일은 그저 하루 쉬는 공휴일로, 6·25는 기억속에서 빨리 지워버려야 할 날로 인식될 만큼 무관심 속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지난 8년의 남북관계 역사에서 6월 15일은 여느 날에 비해 매우 특별한 날로 각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8년 6월은 지난 시기와는 다른 성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 같다. 무엇보다 10년만의 정권교체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였으며, 대북정책 기조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 추진된 이전 정권의 대북정책이 분명한 한계와 문제점이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 대북정책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6월 3일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정권 출범 후 초기 100일의 정책추진이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은 물론 정책추진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할 때, 취임 100일을 반추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00일 동안 남북관계는 북한이 전쟁불사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등 극도의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남북관계 경색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핵·개방·3000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북정책 자체가 부재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 남북관계의 대화단절 및 경색국면이 한반도 전체 안보상황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 경색 그 자체에 연연해서는 안 되며 대화단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다가도 갑자기 경색국면을 맞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과정에서도 북한정권의 핵개발은 지속되고 있었고, 남북관계의 안정이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타기보다, 북한의 의도에 의해 언제든지 파행을 겪을 수 있는 굴곡선을 그렸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대북정책의 한계는 남북관계의 안정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해 북한에 끌려가는 수동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데 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비핵·개방·3000정책에 대해서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것을 거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그 자체를 너무 비관적 상황으로 볼 필요는 없다.북한정권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대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현재 북한이 연일 주장하고 있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철저한 이행은, 바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의 결과인데, 당시 남한의 햇볕정책에 대해 북한은 초기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남한정부가 제시한 햇볕정책에 대해 북한은 “햇볕정책이란 본질에 있어서 반북대결 정책”(조선중앙통신, 99.6.12), “화해와 협력의 미명하에 우리를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여 저들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흡수통일하려는 모략책동”(외무성 대변인, 99.8.17)이라 언급하며 남한의 햇볕정책을 수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북한이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은 결국 햇볕정책의 산실인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에 대해 북한이 보이고 있는 강경한 입장은 10년 전 햇볕정책에 대해 보였던 입장과 비슷한 양상이며, 비핵·개방·3000구상이 남북대결구도에 입각한 강경정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이 수용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남북관계의 진전 상황 및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다고 해서 무리하게 이 국면을 타개해 나갈 경우, 지난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 시마다 대북지원을 추진하여 남남갈등이라는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 전례들을 고스란히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의 한계점을 직시하고 분명히 차별을 둔 대북정책의 비전을 구상하였다면, 원칙과 기조를 분명히 고수할 필요가 있다.

실용의 개념을 원칙도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변화하는 가역적인 것으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지난 10년간 대북정책과는 궤를 달리하겠다고 했으면 확고한 원칙과 기조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이 기회에 북한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변화에 나선다면 우리가 앞장서서 도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변화’가 시대의 핵심 코드가 되었다면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에 북한 역시 조응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전개한 대북지원이 북한 주민의 실질적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고 북한의 식량난과 지원이 계속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북한정권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결코 남북한 주민 모두의 상생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해 비핵·개방·3000구상이 진정으로 남북한 주민의 상생을 위한 정책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일류국가’를 미래의 청사진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단순히 남한만의 경제성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주민 및 해외동포를 포함한 한민족 모두를 포함한 국가발전의 청사진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남북한 모두의 ‘변화’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는 시점에서 대북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판단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는 국가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각인해야 한다. 이념이 아닌 실용적 관점에서 우리 모두의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