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김정일에게 직설적으로 ‘체제전환’ 요구하라

I.
지난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 하고 영면하였다.

6일간의 조문기간 중에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치적 역정을 돌아보며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 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으면서 고인의 삶에 대하여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만이 갖는 정치문화이다. 필자 역시 현대 한국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앞에 두고 소회(所懷)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에서 시대의 흐름은 마치 여울목의 급류처럼 빨라, 인생무상의 의미를 반추(反芻)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유엔의 북한제제 하에서 남북당국자 회담 재개 가능성 등, 변화의 조짐은 다양하다. 그러나 ‘주고-속고’, ‘다시 주고-다시 속고’, ‘계속 주고- 계속 속아온’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우리의 잠재의식에서 상흔(trauma)이 되어 이제는 조건반사적으로 북의 접근에 경계심을 안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점은 특히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북의 조문단의 행적에서도 드러났다. 조문은 다만 구실일 뿐, 이들의 진정한 관심은 김정일의 특사로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그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었다.

물론 ‘이명박 역도패당’을 입에 달고 다니던 김정일이 별안간 그의 심복 수하들을 한국정부에 보내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역도 메들리’를 전격적으로 중단한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것은 남북 간의 관계를 해빙모드로 전환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제 전선에 균열을 내고, 한․미간의 이간질을 책동하면서 개성과 금강산 사업을 다시 살려 북한의 외화수급에 숨통을 틔우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약하게 보인다 싶으면 때리고, 강하게 나오면 껴안는 모택동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별안간 거친 욕지거리를 중단하고 같은 입으로 교태를 부리는 것을 ‘그 무슨 전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체면도 품위도 잃어버린 막장 정권의 행태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일개 사기업 회장에 불과한 현정은씨와 당국자회담의 내용을 합의한 것,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이 사적 단체를 통해 입국한 것 등은 김정일이 한국정부를 얕잡아 보기 위한 행태이기도 하지만, 김정일 스스로 주권국가라면 응당 취해야만 하는 품격이나 금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사적 폭력집단의 두목 노릇을 선택한 것이다. 그만큼 급한 처지이든지, 아니면 사리판단이 흐려졌던지 혹은 두 경우 모두 해당되던지이다.

II.
문제는 이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김정일의 전술변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 방식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어설픈 남북대화의 재개보다는 현 시점에서 국제사회와 합심하여 대북제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의 담담(談談)에 타타(打打)로 대응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정부의 공식적 부인과는 달리 현정은 현대아산회장의 방북이 정부와 사전 조율되었다고 볼 때, 한국정부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는 추측은 설득력이 있다. 즉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확언하였듯이 “북한의 핵도발을 보상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대북제제의 기본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김정일 정권이 코너에 몰린 현 시점이야말로 북한이 자발적으로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호기라는 점에서 한국 주도하에 남북대화를 끌고 나갈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북한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일의 구두메시지에 ‘남북정상회담 제의’가 언급되었다는 언론보도를 청와대가 곧바로 부인하였지만, 과거에 김정일을 만나기 위하여 5억불 가까운 면담료를 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온갖 구애와 수모 끝에 임기가 다할 무렵에야 김정일을 만날 수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다른 상황이기는 하다.

III.
다른 한편 봄철이 되면 비료를 얻기 위해 남북장관급회담이라는 씨뿌리기를 잠시 했다 중단하고, 가을이 되면 다시 무슨 핑계로 남북대화를 허용하면서 쌀과 현물원조를 수확한 후, 겨울이 되면 대화의 농한기로 들어가 남측의 애를 태우다 이듬해 다시 봄이 되면 ‘남북OO회담’을 허락하며 비료를 챙기는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반복되던 북한의 행태였다.

이 당시에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였다. 즉 “북한을 지원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한다”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물론 “북한을 지원하면, 북한은 개방 한다”라는 햇볕정책과 완전히 같은 이유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실패하였다. 그 이유란 “우리가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개방을 하지 않으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더욱 더 갖다 바칠 수밖에 없다”는 북한정권의 ‘현명함’ 때문이었다.

북한의 이런 행태를 뒤집으려면 북한 스스로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한국정부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데, 공교롭게도 이런 환경이란 바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제인 것이다. 지금 북한이 대북제제라는 환경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대화전술로 전환한 것은, 다른 한편 국내적으로 남북대화 재개의 압력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이런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원칙고수로 인해서 북한이 대화를 제의했기 보다는, 현 정부의 원칙고수 대북정책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전술적 대화에 나서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대북제제와 남북대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분명한 점은 ‘현 상황’에서는 대북제제가 남북대화 재개의 필요조건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이명박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만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제를 한국이 나서서 흔들 경우, 현재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조금 잠잠해진 미국의 친북협상주의자들(네오 선)이 “북한의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협상을 통해 주고-받기를 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도 한국으로서는 그것을 비판할 명분을 상실할 것이다. 또 그럴 경우 김정일 정권은 주도권을 잃어가면서까지 남북대화에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IV.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어떤 내용과 방식의 남북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조문단에게 “북한과 전술적인 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핵폐기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였다고 한다. 즉 남북이 같이 한반도 전체의 전략적 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적 변화의 핵심은 무엇이고 북한은 이 전략적 선택을 왜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북한경제는 바로 수령체제로 인해 망가진 것이고, 현실적으로 북한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대안은 개혁․개방이지만, 그것은 중․장기적으로 수령체제를 필연적으로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령체제는 북한경제의 재건과는 양립할 수 없다. 바꿔 말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은 사실 수령체제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략적 변화란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모두 성공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대한민국과, 정치적 자유에서 세계 최하위, 경제체제는 사실상 붕괴하여 “우에서 내려주지 않아도 자력갱생하라!”는 구호만이 풍부한 북한의 현실을 놓고 볼 때, 객관적으로 ‘북한체제의 변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음이 너무나 분명하다.

V.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통일한국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점에 합의를 보았다. 일본이나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있건 없건 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통일을 반대할 어떠한 명분도 없음은 이들 국가의 체제를 볼 때 분명하다.

또 구주공동체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중국이지만, 중국은 내심 북한이 중국식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로 이행하되, 주권국가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랄 것이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통일한국의 정치체제에 대해서 남북 간에 결정할 문제라고 한 발 물러설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통일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미래 체제문제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로 국제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명박 정부가 분명히 거론해야 할 남북대화의 의제는 북한의 핵폐기와 함께, 북한 경제의 재건이 개혁․개방 이외에 아무런 방법도 없다는 점, 나아가 6․15와 10․4선언에 대한 논의도 북한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의지를 분명히 하고 실행에 옮겨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북한이 6․15선언의 이행을 한국 정부에 요구한다는 것은 한국 정부 스스로 위헌행위를 하라는 이야기이며, 그 위헌적 내용도 결국 통일한국의 체제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체제의 유지란 성공을 전제로 하고, 체제변화란 실패를 전제로 한다. 체제변화를 시도해야 할 쪽은 국가기능 붕괴상태의 북한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이제 북한에게 체제 전환을 요구할 시기가 왔으며 또 우리의 헌법정신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이명박-김정일 회담이 열린다면, 이 대통령은 우회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김정일에게 체제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로의 평화통일을 명문화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과한 명령이다.

사실 김정일의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북한의 체제변화가 김정일에 의해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김정일의 여생으로 보아, 그 스스로가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한다 하더라도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차라라 그것이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혹은 문패라도 달 수 있는 첩경이다.

다른 한편 김정일 이후의 북한을 염두에 두더라도 그것은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의 원칙을 지키면서 정권 차원의 전략을 넘어 한반도에 희망의 미래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대전략, 즉 통일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미래는 오래 지속되며, 우리는 시대의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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