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대북정책 첫걸음 중요하다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실용주의는 명분, 허례허식을 배격하고 실사구시, 즉 실질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새 정부는 남북관계, 대외관계에서도 실용주의를 적용할 것 같다.

23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지만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형식적인 정상회담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발언은 실용주의 노선에 맞다.

이 대통령은 또 고촉통 싱가포르 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새 정부 출범으로 북한이 긴장할 이유가 없다”며 “새 정부는 남북한이 화해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에게는 “만약 싱가포르 정부 차원의 방북이 계획된다면 평양 방문 전이나 후에 서울을 방문해 우리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역시 실용주의 노선에 부합한다.

싱가포르는 북한이 무비자 협정을 맺은 국가이다. 만약 앞으로 싱가포르를 비롯해서 홍콩, 일본 등의 회사들이 개성공단에 참여하면서 ‘우리민족 개성공단’이 아니라 ‘다국적 공단’으로 만들 수 있다면 북한의 글로벌 스탠더드화의 실질적인 첫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 싱가포르가 먼저 나서주면 여러가지로 좋다. 개성공단의 정치적 안정성과 경제적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하지만 실용주의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순 없다. 실용주의란 구체적으로 ‘목표로 접근하기 위한 실용적 경로와 수단’을 의미한다. 즉 대북정책의 목표는 ‘비핵·개방 3000’이며, 이 목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않고, 싱가포르에게 개성공단 참여를 요청하는 것은 실용적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슬로건은 대북정책의 목표를 압축한 문구다. 비핵=군축, 한반도평화체제로 나아가며, 개방=북한의 개혁개방과 국제사회 참여, 3000(달러)=남북통일을 준비하는 북한경제 재건을 함축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원칙대로 하면 ‘비핵·개방 인권 3000’이 맞는 말이다. ‘인권’이 여기에 들어가지 못한 내막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북한정권을 의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대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전 여러 차례 “북한인권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접근하겠다”고 언명해왔다. 2월 1일 동아일보-월스트리트 저널-아사히신문이 참여한 3국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북한경제는 어렵고 인간의 기본권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북한을 인도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북한정권이 아니라 주민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차기 정부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전략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 차원에서 거론할 것이다. 그래야 북한을 정략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 북한인권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 주민에게 급한 것은 빵이다. 그러나 먹는 문제를 도와주면서 인권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동아일보 2008. 2. 2.)

북한인권 문제를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접근하겠다”는 발언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기는 어렵다. 이 대통령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원칙과 나름의 철학을 밝힌 것이다. 인권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기 때문에 인권실현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실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인권문제는 ‘정공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과거 서독이 동독주민 인권문제에 접근한 큰 방향이 일관성 지속성 진정성의 원칙이었다(데일리NK 객원칼럼, 윤여상 ‘北 인권 개선…우리가 지켜야 할 3대 원칙은?’ 참조). 인권문제는 하루 아침에 개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말하자면 인권문제에 ‘정공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같은 원칙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불참-1회 찬성-기권을 되풀이하면서 ‘꼼수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원칙과 철학이 없으면 결국 꼼수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이란 게 말하자면 햇볕을 쬐어서 김정일 정권의 뒤통수를 치자는 ‘꼼수정책’의 측면이 다분히 있었다. 하지만 꼼수는 그것을 상대에게 들키면 도리어 당하게 되어 있다. 김정일이 속임수(詭道)에는 이미 도가 튼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꼼수에 넘어가겠는가?

그런 점에서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도 실용주의를 ‘실용성 있게’ 뒷받침해줄 철학과 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철학과 원칙이 없는 실용주의는 자칫하면 편의주의나 고무줄 잣대가 되기 쉽고, 이로 인해 또다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혼란에 빠져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원칙 있는 실용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김정일 정권’이라는 상대가 있는 만큼 전략적 유연성을 가져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대화 먼저 서두를 필요 없다

‘북한문제’는 크게 핵(군축, 한반도평화체제), 개혁개방, 인권, 통일 문제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네 가지 중 가장 원칙을 지켜야 할 분야가 ‘인권’이다. 이 때문에 인권문제만큼은 인종, 종교, 민족, 성별, 빈부, 정치신념 등 모든 것을 초월하는 기본권임을 우리 사회에서 재확인하고, 따라서 ‘우리민족끼리 인권’이란 있을 수도 없고 동시에 ‘인권 시기상조론’은 말이 안된다는 사실을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체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반발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인권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안되지만, 접근의 방향과 기본원칙, 우선순위, 완급조절 등 사전에 전략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인권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고 아울러 민-관 협력이 절실하다. 정부가 나서서 될 일이 있고 민간이 나서서 유리한 분야가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북한인권문제를 체계적으로 풀어간다는 취지에서 본격적인 민-관 협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남북대화를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남북관계 주도권은 사실상 북한이 갖고 있었다. 자신들이 필요하면 제멋대로 대화의 문을 닫거나, 마지못해 열어주었다. 우리는 실컷 지원해주고도 농락을 당해왔다. 김정일 정권은 자신들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계속 가만히 있으면 남한이 먼저 대화의 문을 노크해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는 계속 통미봉남(通美封南) 하고 있으면 남한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남북 대화에 조급증을 내면서 이를 남한내 정치에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문제를 남한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잘 견지해야 한다. 지금 남북 양자관계에서 상대의 도움이 필요한 쪽은 북한, 구체적으로 김정일이지 우리가 아니다. 상대가 먼저 대화를 요청해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게 유리하고, 기회가 오면 먼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는 방향으로 대북 협상전략 전반을 새로 짜야 한다. 예를 들어 봄철에 우리가 식량과 비료를 관례적으로 지원해왔는데, 이 문제에 대해 북한이 대화를 요청해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 이에 대비해서 전략을 잘 마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각종 경협, 대북지원 분야에서 옥석을 잘 골라내서 추진할 것은 하고, 폐기할 것은 폐기하는 일이다.

한미동맹, 한일협력은 특별히 중요하다. 북한이 계속 통미봉남으로 나가거나 중국과의 경제협력(사실상 중국의 경제지원)이 강화될 경우 ‘미국이 남북을 분리통치(devide & rule)하려 한다’느니, ‘중국이 북한을 속국화한다’느니 하는 잘못된 견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류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한미공조를 강화하고, 아울러 과거에 비해 미-북, 중-북 교류가 많아지도록 지지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첫걸음은 기다리는 것과 (체계적인 북한인권정책 등을)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일 잘하는 농꾼은 일 나가기 전에 농기구부터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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