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헌법 초안 난항

(중앙일보 2005-08-17)
이라크 3대 정파(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가 헌법 초안에 합의하지 못했다. 3대 정파 대표들로 구성된 헌법초안위원회는 과도행정법에 명시된 마감 시한인 15일 밤 12시까지 헌법 초안 협상을 매듭짓지 못했다. 이날 밤 헌법 초안 승인을 위해 소집됐던 제헌의회는 합의안 마련 시한을 1주일 연기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 정부 수립과 연합군 철수 등 정치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 연방이냐 단일정부냐

가장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한 대목이다. 당초 연방안을 주장한 세력은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1991년 이후 사실상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자치를 누려왔다. 이들은 이번 전쟁에서 미국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발언권을 강화했다. 이들은 자치구역의 확대와 강화, 나아가 궁극적인 독립을 주장했다.

최대 종파인 시아파가 연방안에 합류하면서 양상이 복잡해졌다. 시아파는 밀집 주거 지역인 중남부 지역에 자치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쿠르드족의 북부와 시아파의 중남부 지역은 모두 유전지대다. 두 집단이 자치정부를 구성할 경우 소수 수니파는 아무런 자원도 없는 중부 지역에 고립된다.

그래서 수니파는 ‘단일 중앙정부 구성’ ‘석유 수출 수익의 균등한 배분’을 요구했다. 종교.민족.지역에다 경제적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 신정이냐 세속국가냐

종교적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다. 보다 원리주의적인 성향의 시아파가 신정(神政.이슬람법이 다스리는 나라)을 주장했다. 이슬람을 ‘헌법의 유일한 기본 정신’으로 명시하자고 했다. 시아파는 같은 시아파 신정국가인 이란을 모델로 삼고 있다. 미국이 가장 꺼리는 모델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쿠르드족과 수니파는 이슬람을 ‘헌법의 기본 정신 가운데 하나’로 삼자고 주장했다. 이슬람 정신은 존중하되 세속법이 다스리는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 사태 악화 가능성 커

22일까지 합의된 초안이 마련될 경우 곧바로 의회 승인을 거쳐 국민투표에 들어가게 된다. 3대 정파가 합의했을 경우 정부 구성까지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3대 정파 간 이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소수 수니파를 무시하고 헌법 초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 아니면 주요 쟁점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초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수니파에 뿌리를 둔 무장세력의 저항이 격렬해질 수 있다. 수니파가 국민투표에서 부결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3개 지방 이상에서 3분의 2 이상이 반대할 경우 법안은 부결된다.

이 경우 새로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선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치 일정이 최소한 6개월 이상 지연되면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