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 있었다. 15일 한국과 북한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린 평양 김일성 경기장 관중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북한 당국은 그보다 먼저 한국 취재진과 응원단의 방북을 불허하고, 경기 생중계를 거부하기도 했다.
월드컵 예선 현장 중계가 없었던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1985년 3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이었다. 현지 위성 송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무관중 경기도 한 번 있었다. 2005년 3월 평양에서 이란과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하던 북한대표팀이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주심이 심판 판정에 항의한 남성철을 퇴장시키자, 격분해 병과 의자를 그라운드에 내던지고, 이란 선수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위협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북한 대표팀에 ‘무관중 징계’를 내렸다. 그해 6월 북한대표팀은 일본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 홈경기를 제3국인 태국에서 치렀다.
북한은 경기 전날(14일) 양팀 매니저와 경기 감독관, 안전담당관이 참석한 회의에서 관중을 확인할 때, ‘4만 명 정도 들어올 것 같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여행사를 대상으로 한 티켓 판매는 그보다 먼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관중 경기가 이루어진 경위와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이 개인에게 극단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북한에서 무중계, 무관중 경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한 사람뿐이다.
텅 빈 경기장에 선수들만 몰아 넣어놓은 채, 김 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눈 내린 백두산에 올랐다. 그는 왜 이런 어이없고, 황당한 결정을 내렸을까?
우선 외교적 이유를 들 수 있겠다. 김 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날, ‘미국이 강요한 고통에 인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북한의 경제 사정은 악화되고,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은 급감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무중계, 무관중 월드컵 경기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FIFA 랭킹 37위, 북한은 113위다. A매치 상대 전적에서도 북한은 한국에 1승 8무 7패로 열세다. 패배했을 때, 홈팬들의 반발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한국 선수단의 외모나 옷차림, 언행이 주민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1989년 임수경 전 국회의원이 학생 신분으로 평양에 갔을 때, 북한 주민들은 임 전 의원의 자유분방한 언행과 세련된 옷차림을 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심을 갖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경기장 연설을 들은 북한 주민이 ‘나이도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던 모습을 보며 인간됨을 알 수 있었다. 원수님(김 위원장)과 대조적이다’는 말을 했다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뉴스도 있었다. 폐쇄된 사회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외부와의 교류에 영향을 민감하게 받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김정은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생중계 거부로 한국 국민과 축구팬들이 경기를 즐길 권리를 빼앗았다. 경기 당일에는 주민의 관람을 막아, 자국민이 경기를 즐길 권리까지 박탈했다. 김정은 정권은 이번 일을 통해 교류와 협력, 한반도 평화, 그리고 북한 주민의 권리 증진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를 국제사회에 여실히 보여주었다.